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 같은 적대적 공존관계에 있지는 않다. 오히려 다른 어떤 양국 관계보다 상호의존도가 높다. 시장경제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중국은 미국이 선도하는 글로벌 경제의 수혜자가 돼 있고, 미국에서 유학한 중국 인재들이 계속 귀국하고 있어 제5세대 중국 지도부는 미국 유학파가 주류가 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중국 사이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가치관이나 그 실천전략에서 견해차가 있다. 미국은 다원화사회, 자유 우선의 나라인데 반해 중국은 아직 일당 통치의 나라, 질서 우선의 나라다. 이는 양국이 역사뿐 아니라 경제발전 단계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는 소위 포위정책은 이제는 생각할 수 없다. 중국의 시장경제는 결국 중국을 ‘자유화(liberalization)’로 이끌 것이고, 중국은 중국식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을 향해 움직여 갈 것이다. 양국은 결국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이를 것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한국이 어느 나라를 선택해야 하느냐는 것은 글로벌 시대를 사는 오늘날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 미중 간에는 구체적인 현안에 관해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 한반도 문제, 북한 핵문제에 관해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논쟁과 절충을 거쳐 결국은 북한 핵 개발을 억지하는 쪽으로 조율될 것이다. 세계공동체가 이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나라 중 어디가 우선이냐는 질문에 굳이 답해야 한다면 미국이 우선한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모험주의나 핵 위협을 억지한다는 안보 차원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상호 의존과 협력 수준에 비춰 봐도 한미 맹방관계는 우리 외교의 기본이다.
궁극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을 모두 필요로 한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 핵 위기를 넘어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통일의 과정에서 공통인식과 정책을 갖게 되기를 우리는 원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과제다.
우리는 분단돼 있건, 통일돼 있건 동아시아에 있는 ‘중간국가(middle power)’일 뿐이다. 강대국도 아니고 중심 국가도 아니다. 그 실상에 맞는 실사구시의 외교를 수행해야 한다. 통일 한국은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고 재래식 무기만으로 무장된 평화 지향 국가가 될 것임을 지금부터 국제사회에 천명해야 한다. 통일 한국은 시장경제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임을 천명하고, 통일 한국의 위상에 관한 과대 포장이나 과대 발언을 삼가야 한다. 실사구시의 외교는 미국과 중국, 나아가 국제공동체의 신뢰를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신뢰는 국가 외교력의 가장 큰 자산이다.
홍순영 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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