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자식들이 병역의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면 그만이다. 범죄가 아닌 만큼 ‘사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고 치부하며 지나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부 식자층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황당한 정책 비판을 내놓는다. “세계적으로 국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인데 한국 정부가 이를 거스르고 있다”는 것. 해외 사례를 제멋대로 인용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적에 대한 규제가 세계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각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지, 별로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아니다. 또 국민으로서 의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국적에 대한 규제가 가장 개방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를 살펴보자. 싱가포르 정부가 ‘해외 인재’라고 인정하는 고위 경영자, 고급 엔지니어, 첨단 과학자들은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영주권을 얻을 정도로 혜택을 받는다. 반면 단순 근로자들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영주권 신청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병역의무도 엄격하다. 한국에서는 대학생이 되면 징집을 연기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고교를 졸업하면 건강한 남자는 무조건 군대에 가야 한다. 국가의 혜택을 받았는데 상응하는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혹독하게 처리한다.
국비 장학생의 경우를 보자. 싱가포르 정부는 예전부터 장학생들을 외국에 많이 보내 왔다. 그렇지만 이들이 공부한 뒤 국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가문의 불명예로 만든다. 장학금 전액을 반납해도 계약 위반 학생들의 명단을 신문 지상에 공개해 버리는 것이다.
한편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탓하며 징벌을 강화하고만 있으면 생산적인 결과가 나오지 못한다. 싱가포르에도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을 나가거나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이 꽤 많다. 하지만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체제를 갖췄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고촉통(吳作棟) 전임 총리도 이민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기보다는 인재들을 국내에 끌어들이는 데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적에 따르는 권리만 바라보고 의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국적 이탈 행렬에 대해 정부는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잘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한국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이 들어오도록 하면 된다. 그러면 국적을 포기했던 사람들조차도 나중에 국내에 돌아와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미래에 돌이켜볼 때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국내 체제를 정비하는 노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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