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 시험은 1998학년도 시험부터 쉬워졌다. 출제되는 유형이 정해져 있어 최상위권 학생이라면 어지간히만 공부해도 만점을 받을 수 있다. 텝스 945점 학생이나 495점 학생이나 똑같이 수능 영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다면 기를 쓰고 영어 공부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학들이 논술 시험에 영어 지문을 출제해 온 것은 수능의 이런 형편없는 변별력을 보완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영어논술마저 금지시켰다. 대충 아무렇게나 뽑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교육비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이지만 토플 점수는 152개국 가운데 110위에 머무른다. 한국 대학들의 세계 경쟁력은 또 어떠한가. 중국 상하이(上海)교통대와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 등이 서울대의 순위를 100위 밖으로 발표했다. 대학 입학을 위한 엄청난 사교육비 투자를 감안하면 밑져도 한참 밑지는 장사다. 이런 수치스러운 결과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잘못된 영어 교육이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중학교까지는 그런대로 영어를 체계적으로 학습해 오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수능시험을 준비하게 되면, 그때부터의 영어 공부는 단기 성과만을 추구하는 소모적인 학습으로 변질된다. 영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출제된 수능 영어 시험 문제를 살펴보면 문제의 심각함을 금방 알 수 있다. 영작문 문제는 단 하나도 없고 정확한 해독 능력을 요구하는 문제도 없다.
모두가 다 감(感)으로 어림잡아 맞히는 문제이므로 가르치는 쪽은 찍기 요령을 알려 주고, 배우는 쪽은 어떻게 하면 문제를 빨리 풀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러니 만점을 받는다 해도 그 영어가 대학에서 학문하는 데 제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학습 방식에 물든 우리 대학생들은 학습 능력과 사고력에서 선진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고 결국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제는 수능 영어 시험을 고쳐야 한다. 수능 영어 시험 대비가 진정한 영어 실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윤재 영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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