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불편한 한일 관계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장이 되고 말았다. 교토(京都)에서 이루어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과시했던 끈끈한 미일동맹 관계와는 대조적으로 한일 두 정상의 만남은 ‘냉랭’ 그 자체였다. 평행선을 달리는 역사인식을 확인한 것이 30분에 걸친 정상회담의 유일한 결과였으니 말이다. 10월 15일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던진 충격파는 여전히 한국과 일본의 공식 외교 관계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중심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논리를 좇아가 보자. 정상회담 하루 뒤인 19일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전쟁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방위전쟁’이고 난징(南京) 학살은 없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세간의 눈으로 볼 때 이 두 견해의 괴리는 매우 커 보이지만 정작 고이즈미 총리 본인은 이를 못 느끼는 모양이다. “한일 관계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는 그의 언급은 외교적 수사만은 아니다.
그러면 고이즈미 총리의 속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미국과의 밀월 관계가 아시아 경시를 부추긴다는 분석은 일본 정부가 인식하는 미일 관계 및 한일·일중 관계의 무게를 고려했을 때 표피적인 파악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고민은 아시아의 정서도 알지만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그만둔다고 해서 각국과의 관계가 호전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심의관)는 지적이 적확한 듯하다. 요컨대 그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단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국내적 지지’를 우선시한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그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분명 전후 일본의 보수정치가 낳은 최대의 이단아임에 틀림없다.
계속 이어지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논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먼저 한일 간의 외교 관계에서 역사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 관한 한 선배 격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조차 A급 전범의 분사를 거론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그런 ‘구시대 정치’와의 차별성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다. 이런 정황에 힘입어 포스트 고이즈미를 노리는 다른 정치인들도 대아시아 강경파 내지 역사 문제의 상대화라는 대열에 영합하고 있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현재와 같은 외교 관계의 경색을 풀어낼 방도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올해 초 선언된 ‘한일 우정의 해’는 해묵은 양국 관계의 현안들이 제기되고 격돌하는 가운데 끝자락이 어른거린다. 불편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한일 관계의 전환기를 전망하기에 귀중한 나날이기도 했다. 그 가장 큰 교훈은 한일 양국의 ‘정면승부’가 시도되었다는 데서 찾고 싶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인류의 보편적 방식에 입각한 대일정책 기조”의 천명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은 화해와 협력의 모색과는 분명 거리가 멀다. 하지만 쟁점의 회피와 적당한 타협으로 일관했던 과거와는 분명히 출발선을 달리한다. 당분간은 힘들고 불편한 국면들이 이어질 것이다. 이 갈등이 어떻게 정리되는가에 따라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형이 형태를 드러낼 것이다.
하종문 한신대 교수 일본사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