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당초등학교 은정남(殷征男·59) 교장은 교내의 모든 수도꼭지에 7ℓ들이 빨간 대야를 비치했다. 손을 씻은 물은 고스란히 대야에 담겨 교내 화단과 자연학습장에 뿌려진다. 학생들은 1주일에 한번 ‘물 당번’을 맡아 대야를 관리하며 물의 소중함을 배운다.
99년 은 교장이 부임 후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한 방울의 물’이 모이면 얼마나 커지는지를 학생들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았더니 20분 만에 페트병 1병을 채웠다. 교내 수도꼭지 수를 곱해 나온 결론은 1년에 500t의 물이 낭비된다는 것. 엄청난 결과에 놀란 학생들은 물 절약을 자진해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6학년 이지선양(12)은 “이제 습관이 돼 컵에 물을 따라 먹고 남으면 ‘빨간 통’에 부어요. 집에서도 물을 받아서 양치질하고 수도꼭지를 잠그게 돼요”라고 말했다.
점심 급식이 끝나자 학생들은 화장지를 뜯어 식판을 닦느라 분주해졌다. ‘기름기가 묻은 식판을 종이로 닦아주면 설거지물 절반을 아낄 수 있다’는 은 교장의 제안 때문이다.
급식을 책임지는 김정미 영양사는 “어린이들 모두 깔끔하게 식판 닦기를 기대할 수는 없어도 실천한다는 것이 중요하죠. 또 마요네즈 같은 기름기만 닦아줘도 설거지의 한 단계를 건너뛸 수 있어요. 기름때를 벗기기 위한 약품도 덩달아 절약됩니다”라고 말했다.
물 절약과 더불어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생명의 신비함이다. 학생들은 매번 물조리개로 재활용 물을 떠다가 채소와 화초에 사랑을 담아 뿌려준다. 상추, 오이 등은 직접 따먹기도 한다.
6학년 박민희양(12)은 “가뭄이 심하다지만 우리 화단에는 말라죽는 식물이 없어요. 당번도 열심이고, 자연관찰 숙제를 하는 친구들도 꼭 물을 주고 가꾸니까요”라고 말했다.
은 교장의 ‘물 절약 교육’에는 난관도 많았다. 일요일에 어른들이 학교 운동장의 수도를 콸콸 틀어 낭비하는 것을 보고 급수를 차단해버리자 당장 조기축구회가 항의했다.
은 교장은 “어린이들에게 물 절약을 가르치는데 어른들이 낭비해서야 되겠느냐”고 설득해 지금은 지역 주민들도 서당초등학교에 오면 너도나도 물 절약에 동참한다.
하지만 은 교장도 화장실 청소만은 물 절약을 ‘관철’하지 못했다. 용역 청소부들이 센 물줄기로 변기를 닦는 것이 못마땅해 물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각종 청소도구를 ‘발명’하고 학생들을 통해 청소를 하려 했지만 학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해 은 교장이 양보했기 때문.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화단에 물을 주는 모습이 가장 사랑스럽다는 은 교장은 “어린 시절부터 물 절약과 생명사랑 정신을 배운 어린이는 커서도 이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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