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성범죄자 공개'법적 논란 가열]"강력처벌 사회적 합의"

  • 입력 2001년 8월 30일 18시 45분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이 30일 공개되자 이를 둘러싼 법적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공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중 처벌’이자 ‘인격권 침해’에 해당하며 가족에게 ‘연좌제’를 적용한 셈인데다 제3자 피해 가능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여성계 등은 기본적으로 성범죄자의 구체적인 신원까지는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인권침해의 소지가 거의 없다고 반박한다.


▽공개반대 입장〓재판에 의해 형벌을 받은 뒤에 또다시 ‘여론재판’을 통해 ‘사회적 형벌’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중 처벌이라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사회와 단절된 성범죄자는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또 체면과 사회적 평판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신상공개는 ‘사회적 살인’이며 인격권의 직접적인 침해라는 지적이다.

신상이 공개된 사람의 가족까지 주변의 비난과 따돌림을 받게 돼 사실상의 연좌제라는 주장도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이병희 연구원은 “신상이 공개된 부모를 둔 청소년의 인권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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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도 7월 전직 공무원이 “신상공개를 막아달라”며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신상공개가 본인과 가족, 주위 사람들의 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어 위헌소지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법의 취지가 해당 지역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는 데 있다면 굳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는 ‘과잉입법’의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와 함께 미성년자 살해 유괴 등 위법성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신상은 공개하지 않는 현실에 비춰 지나친 조치라는 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공개 대상자와 같은 지역에 사는 동명이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7월 영국에서도 주간지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미성년 상대 성범죄자 49명의 이름과 사진 거주지 등을 지면에 공개하자 경찰과 전국 범법자 재활 및 보호협회, 어린이보호단체 등이 역효과가 더 크다며 강하게 반발해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

▽공개찬성 입장〓청소년 상대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법이 제정됐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고 주장한다.

관련법에 명기돼 있듯이 공개된 내용은 대(對)국민 계도문에 포함된 범죄사례일 뿐 형벌을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중처벌로 볼 수 없다는 것. 또 범죄자의 주소나 직업까지는 밝히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과잉입법의 소지도 없다는 주장이다.

청소년 보호위원회는 “신상공개의 입법취지는 항상 있는 살인 등의 범죄와 달리 최근 급증하는 청소년 상대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므로 반대론자들의 형평성 문제 제기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청소년 보호위원회는 또 범죄자의 한자이름과 생년월일이 공개되므로 동명이인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기우라고 말했다.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입안한 서울고검 강지원(姜智遠·전 청소년보호위원장) 검사는 “신상공개의 주목적은 청소년 성매매 근절이었는데 성매수범 가운데 극히 일부의 신상만 공개된 것이 오히려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명단공개 홈페이지 마비▼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 169명의 명단이 공개된 청소보호위원회 홈페이지(www.youth.go.kr)가 네티즌들의 접속이 폭주하면서 30일 하루종일 정상 가동되지 못했다. 청소년보호위 전산실은 “오전 9시반부터 쉴새없이 접속이 이뤄졌다”며 “직원들도 제대로 홈페이지 내용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전산실은 무제한 접속으로 시스템이 다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후부터는 동시접속자 수를 300명으로 제한했다. 한 관계자는 “접속이 폭주해 찬반 의견 게재 수를 확인할 수 없으며 검색 기능도 사실상 마비상태”라고 밝혔다.

<문권모기자>africa7@donga.com

▼외국은 어떻게…▼

외국의 경우 ‘사생활침해’와 ‘인권보호’보다는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자의 신상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선진국 중 가장 엄격하게 신상공개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1994년 뉴저지주에서 7세 소녀 메간 켄터가 이웃집 남성에게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1996년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를 내용으로 하는 연방법인 ‘메간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메간법에 따라 정보를 공개하는 방법과 정도는 주별로 다르다. 뉴저지주의 경우 성범죄자의 이름과 사진 등 관련정보를 인터넷과 책자를 통해 공개하는 것은 물론 신문에도 싣고 있다.

뉴욕주도 범죄자의 이름과 사진 등 정보가 담긴 소책자를 만들어 주민이 자주 찾는 슈퍼마켓과 우체국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고 캘리포니아주는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재발위험이 있는 사람을 ‘위험 인물’로 분류해 학교와 지역사회에 신상정보를 통보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1997년 제정된 ‘성범죄법’에 따라 성범죄자는 지역경찰서에 거주지를 신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경찰은 학교와 지역사회에 관련정보를 제공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최근 성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집단 강간범을 종신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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