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법-치안위해 생명바친 경찰관들은 과연 뭔가”

  • 입력 2002년 4월 29일 16시 46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27일 부산 동의대 사건 관련자 가운데 신청자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자 경찰 내부에서 집단 반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찰청은 자체적으로 위원회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등의 입장 표명과 함께 법률적인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동의대 사건 당시 숨진 경찰관들의 유족들도 반발하고 있으며 경찰청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29일까지 위원회 결정에 항의하는 글이 5000건 이상 올라왔다.

ID ‘류극림’이란 네티즌은 경찰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앞으로 격렬한 시위가 발생할 때 어느 누가 지휘부의 명령을 따르고 충실히 자기 직분을 다하겠느냐”며 “경찰청 단위의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문순’이란 경찰관은 “동의대 사건 당시 시위대가 민주화운동을 했다면 당시 주검으로 변한 우리 경찰관은 민주화의 반역자란 말인가. 경찰에 폭력을 가하고 경찰을 화염병으로 불태워 죽이면 민주투사가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당시 91소대장으로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부산지방경찰청 이호선(李鎬先) 외사1계장은 “학내 문제로 발생한 시위 도중 학생에게 끌려간 전경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을 확대 해석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료▼

- 사건당시 동아일보 1면
- 동의대 3명 사형 구형/항소심 90/02/03
- 동의대 사건 항소심 7명 집유/6명은 형량 늘어 90/02/21
- 동의대 사태 25명/대법원,상고기각 90/06/23
- 동의대사태 진상규명 요구/13개대생 철야농성 91/05/03

또 ‘5·3 동의대사태 순국경찰관 유족회’ 대표 정유환씨(45)는 “법과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시위를 진압하다 경찰관들이 순직했는데 그 원인이 된 학생들의 시위가 민주화운동이라면 고인들은 매국노란 말이냐”며 분개했다.

경찰청은 이처럼 사태가 확산되자 29일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띄우고 “동의대 사건 관련자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결정에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대응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며 자제를 호소했다.

이팔호(李八浩) 경찰청장은 “당장 경찰이 어떤 입장을 표명하기보다는 신중하게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그러나 과격시위로 경찰관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의 관계자까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당시 사건에 관련된 학생들의 가족 모임인 ‘5·3동지회 가족대책위원회’ 이정이 회장(62·여)은 “사건의 발단이 비록 학내 문제였더라도 참극을 빚은 원인은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당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사면복권된 윤창호씨(36)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사건의 원인에 대한 검토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 결정으로 당시 진압 경찰이 잘못한 것처럼 오해받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5·3동지회와 동의대 총학생회는 5월3일 교내에서 5·3사건 기념집회를 가질 예정이며 숨진 경찰관의 유가족 등 70여명은 같은 날 대전국립묘지 경찰묘역에서 5·3 동의대사태 순국경찰관 13주기 추도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부산〓석동빈기자 mobidic@donga.com

▼동의대 사건이란▼

89년 1월 있었던 입시부정 사건이 발단이 됐다. 그해 4월 한 교수가 입시부정을 폭로하면서 학생들의 항의와 시위, 경찰의 진압으로 이어졌다. 5월1일 동의대생들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 항의해 가두시위를 벌이다 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은 공포탄을 발사해 시위를 진압했다. 이에 학생들은 5월2일 항의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전경 5명이 학생들에게 붙잡혀 동의대 중앙도서관에 감금됐다.

경찰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3일 새벽 도서관에 진입했으며 학생들이 복도에 쌓아 놓은 책걸상에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나면서 경찰관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이 사건으로 동의대생 71명이 살인과 방화치사상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31명은 방화치사상 혐의로 징역 2년에서 무기징역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40명은 집행유예 또는 기소유예로 석방됐다. 관련 학생 81명이 제적됐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리위원 명단 및 표결여부
이 름현재 직책표결 참가 여부
조준희(趙準熙·62·위원장)변호사참가
이우정(李愚貞·77)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이사장 참가
김상근(金詳根·61)제2의 건국위원회 상임위원장참가
최학래(崔鶴來·57)한겨레신문 대표이사 한국신문협회장참가
김경동(金璟東·64)시민사회포럼운영위원장참가(사퇴의사 표명)
김정기(金政起·60)한국외국어대 교수참가
백화종(白和鍾·51)국민일보 주필참가
김철수(金哲洙·67)명지대 석좌교수기권(사퇴의사 표명)
노경래(盧京來·59)변호사참가(사퇴의사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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