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밀 사유화 논란〓권 전 최고위원은 검찰 소환에 앞서 김 전 차장으로부터 정보 관련 사항을 ‘보고’받았다고 시인했다. 한 측근도 2일 “검찰이 진승현씨의 돈을 받았다고 밝힌 당일 김 전 차장이 들고온 것은 돈가방이 아니라 청와대에 보고한 정보보고 사본이 든 봉투였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 정부에서 아무런 직책도 맡지 않은 ‘사인(私人)’인 권 전 최고위원이 국가 핵심 정보에 손쉽게 접근해 왔음이 명백히 드러난 셈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서 보고라는 것은 부하가 상급자에게 하는 것”이라며 “조직 계선상에 있지 않은 인사가 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결국 정보기관을 사유화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뭐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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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노갑씨 정치자금 계좌추적 |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많다. 김 전 차장만 권 전 최고위원에게 ‘보고’를 했겠느냐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권력 핵심에 정보를 갖다주며 충성서약을 하는 것은 과거 정보기관 고위관료의 처세술”이라고 말했다.
한편 권 전 최고위원 측은 이 같은 정보를 입수, 정적(政敵) 견제용이나 자신에 대한 공격 방어용 등 개인적으로 썼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
권 전 최고위원 측은 이에 대해 “권 전 최고위원은 야당시절 정보위원을 할 때부터 김 전 차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며 “김 전 차장이 찾아왔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지시 때문이었거나 자기구명을 위해서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권 전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김 전 차장이 실제 자주 보고한 곳은 따로 있다”고 반박했다.
▽국정개입 논란〓권 전 최고위원이 국가 주요정책에 개입했을 개연성은 없지 않으나 뚜렷이 드러난 사례는 없다. 다만 인사 문제를 둘러싸고는 여러 가지 잡음이 많았고 세간에는 “모든 길은 권노갑으로 통한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는 실제 국민의 정부 출범에 기여한 사람들의 뒤를 봐주는 일을 도맡아 해왔으며 이런 명목으로 정부기관 산하 단체장이나 간부 임명에 깊숙이 간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안동수(安東洙) 법무부장관 임명 파동 직후 불어닥친 쇄신 파문의 주된 표적이 권 전 최고위원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권 전 최고위원이 청와대에 심어놓은 자신의 측근들을 통해 수시로 정보를 입수했으며 이들을 통해 인사에 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 전 최고위원 측은 “권 전 최고위원은 집권 초기부터 김중권(金重權) 대통령비서실장 등 신주류의 견제를 받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제 인사에 개입한 부분은 별로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권 전 최고위원 측 일각에서는 “실제 인사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권 전 최고위원이 아니라 김홍일(金弘一) 의원이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한때 권 전 최고위원이 특정인을 정부 산하단체 간부로 진출시키려다 김 의원 쪽이 제동을 걸어 무산돼 한동안 두 사람이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가 여권 주변에 파다했다.
▽한나라당 공세〓한나라당은 2일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권씨는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모든 정보보고의 내용과 정치자금 액수를 소상히 밝히고, 각종 국정인사에 개입한 진실도 털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검찰은 권씨를 1억원 수뢰 혐의로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끝낼 게 아니라 4대 게이트의 검은 뭉칫돈이 어떻게 여권 실세에게 흘러갔는지, 또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낱낱이 수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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