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기자의 눈]이정은/대통령 친인척 봐주기?

‘이용호(李容湖) 게이트’에 연루돼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뒤 구속 기소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처조카 이형택(李亨澤)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가 25일 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구속된 지 146일 만의 일이다.

재판부는 이씨가 ‘보물발굴사업’ 수익의 15%를 받기로 하고 국가기관에 사업 지원을 청탁한 혐의와 이용호씨에게서 1억5000만원의 이익을 얻은 혐의,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가 모두 유죄라고 인정했다.

이씨에게 적용된 혐의의 법정형을 합치면 징역 12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이용호씨에게서 각각 5000만원과 6666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와 신승남(愼承男)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承煥)씨는 징역 1년과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지내고 있다.

재판부는 이씨가 나중에 지분에 관한 약속을 하긴 했지만 처음에는 ‘국가적 사업’이라는 순수한 뜻에서 지원했다는 점과 이씨가 보물발굴사업으로 현실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집행유예 선고의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제시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 좋은 뜻에서 남의 집을 지켜주다가 욕심이 생겨 도둑질을 했다면 처음부터 물건을 훔칠 생각으로 남의 집에 들어간 도둑보다 덜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적 이득’에 대한 논리도 군색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이씨의 예상대로 보물이 발굴됐다면 그는 천문학적인 이득을 봤을 것이다. 남의 지갑에 10억원이 들어있는 줄 알고 훔쳤는데 그 지갑에 돈이 조금밖에 없었다고 해서 좀도둑으로 처벌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또 이씨는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고 국회에서 거짓말까지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가 ‘대통령의 인척’이라는 사실이다. 백합이 썩으면 잡초가 썩을 때보다 훨씬 더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재판부의 후각은 민초들의 그것과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이정은기자 사회1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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