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출범 이후 김종필(金鍾泌) 박태준(朴泰俊)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 등이 모두 DJP 공조에 따른 것이었던 반면 최근 두 명의 총리서리 기용은 이런 정치적 연결고리에서 자유로워진 순수한 ‘DJ 인사’인 셈이다. 그래서 최초의 여성 총리서리와 50세 총리서리의 기용이라는 새로운 ‘실험’도 가능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실험의 이면에는 과거 야당 총재 시절부터 어려운 국면에 처할 때마다 새로운 당, 새로운 인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해온 김 대통령의 평소 용인(用人) 스타일이 그대로 스며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신임 장 서리의 경우는 김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예비해둔 ‘회심의 카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부터 청와대 내에서는 이른바 ‘히딩크형 총리론’이 대두됐고, 젊고 참신하면서 경영마인드를 갖춘 새 인물 찾기에 부심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는 대통령 아들들 문제로 인한 이른바 ‘홍(弘)3 정국’을 벗어나기 위한 카드이기도 했다.
7·11 개각 때도 장대환 서리는 장상 전 서리와 함께 최종 후보군에 들었지만, 김 대통령은 ‘첫 여성 총리’라는 카드를 먼저 선택했다. 차순위였던 장대환 사장에게는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던 문화관광부 장관직을 제의했으나 장 사장이 이를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또 김 대통령은 이번 국회 인준 부결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장 서리를 최종 낙점하면서 그의 ‘언론계 및 경제계 배경’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장상 전 총리서리의 경우 여성계라는 배경을 중시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 인사는 ‘익숙한 사람’에 의존하는 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있다. 장 서리는 매일경제신문사가 주도한 ‘신지식인 운동’이 정부 사업으로 채택되도록 노력하는 등 현 정부와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고, 김 대통령과도 몇 차례 면담기회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 의원들은 특히 장 서리가 정권 출범 초 제2건국위에 참여했던 점과 지역적 연고도 크게 작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 서리는 6·25 전쟁 중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과 해외에서 생활해왔지만 부친과 장인이 모두 전남 나주 출신이다.
현정부 출범이후 총리 | ||
직위 | 성명 | 기간 |
총리서리 | 김종필 | 1998.3.3∼8.17 |
31대 총리 | 김종필 | 1998.8.18∼2000.1.12 |
32대 총리 | 박태준 | 2000.1.13∼5.18 |
총리서리 | 이한동 | 2000.5.23∼6.28 |
33대 총리 | 이한동 | 2000.6.29∼2002.7.10 |
총리서리 | 장 상 | 2002.7.11∼31 |
역대 젊은 총리 8선 | |||
순위 | 성명/직함 | 취임때 나이 | 재임 기간 |
1 | 장도영 내각수반 | 38세 | 61년 5월∼61년 7월 |
2 | 송요찬 내각수반 | 43세 | 61년 7월∼62년 6월 |
3 | 백두진 4대 총리 | 44세 | 52년10월∼54년 6월 |
4 | 박정희 내각수반 | 45세 | 62년 6월∼62년 7월 |
5 | 김종필 11대 총리 | 45세 | 71년 6월∼75년12월 |
6 | 정일권 9대 총리 | 47세 | 64년 5월∼70년12월 |
7 | 이범석 초대 총리 | 48세 | 48년 7월∼50년 4월 |
8 | 장대환 총리 서리 | 50세 | 2002년 8월∼ |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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