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에는 양당 모두 ‘총리 임명동의안 연속부결’을 의식해 적당히 청문회에서 추궁한 뒤 인준해주자는 분위기가 우세했으나 장 총리서리를 둘러싼 문제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장 총리서리가 매일경제 사장으로 재직하며 대기업을 압박해 40억원의 기금을 모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청문위원들 사이에선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 청문위원은 “이제는 적당히 지나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민감한 사안이지만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에 대해서도 과감히 검증해 보겠다”고 말했다.
특히 장 총리서리의 재산형성과정과 부동산투기 의혹을 둘러싸고 “장상(張裳) 전 총리서리보다 훨씬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당 안팎에서 확산됨에 따라 지도부는 “(인준문제는) 청문회를 마친 뒤 의원들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대다수 당직자들이 장 총리서리의 인준은 ‘통과의례’가 될 것이라고 말해왔던 것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여의도연구소가 “장 총리서리 인준이 가결될 경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호남권에서 정몽준(鄭夢準) 의원을 대선후보로 밀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당내 기류의 변화를 입증한다.
일부 의원은 “민주당이 ‘병풍’ 총공세를 펴고 있는데 우리도 인준안을 부결시켜 정면대응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개혁성향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장상 전 총리서리보다 나은 게 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혁파의 한 중진 의원은 “장 총리서리의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특혜 대출 등에 대한 의혹을 보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마무리 지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개혁파 의원들이 특히 문제삼는 대목은 장 총리서리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동생 회성(會晟)씨 등과 공동 명의의 별장을 갖고 있다는 점.
민주개혁연대의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청와대가 한나라당이 인준을 반대하지 못하도록 그 쪽과 가까운 사람을 총리서리로 지명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의원들은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어떻게 그런 인물을 지명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또 몇몇 의원은 한때 장 총리서리 인준을 반대하는 성명을 준비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가 인사청문회 이후로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청문특위 위원들도 단단히 벼르고 있다. ‘장상 청문회’ 때도 특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함승희(咸承熙) 의원측은 “장 총리서리의 의혹들에 비하면 장상씨는 사소하고 지엽적인 문제로 낙마한 셈”이라며 “서민들의 큰 반감을 살 굵직한 문제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유일한 여성 특위위원인 최영희(崔榮熙) 의원측도 “장상씨가 여성이란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느낌이 안 들도록 이번에도 엄격하게 검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 지도부도 정치적 고려로 이번 청문회를 적당히 넘길 경우 국민적 비판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