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례로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해 많은 피해를 냈을 때 과연 우리 방송들은 얼마나 제 역할에 충실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방송사들은 태풍이 몰아친 뒤에야 수해현장을 생중계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방적 기능에 소홀한 것은 물론 대피와 가재도구 정리 등 정작 이재민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미흡했다.
심지어 일부 방송은 태풍이 몰려오는데 드라마나 쇼프로를 재탕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국민과 고통을 함께한다는 공익방송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데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불만이다.
공영이건 민영이건 지금 우리 방송사들은 공익보다는 시청률에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아 보기 민망한 프로그램을 계속 방영하고 연예인의 신변잡기 프로그램들을 집중 편성해 국민의 지적(知的) 수준을 낮추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속어, 국적 불명의 언어, 선정적 표현에 앞장서고 방송뉴스가 실제 살인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내 방송위원회로부터 중징계나 받는 것이 우리 방송의 현주소다.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방송법은 ‘방송은 정부 또는 특정집단의 정책 등을 공표함에 있어 다른 집단에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각 정치적 이해 당사자에 관한 프로그램을 편성함에 있어서도 균형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방송사들이 이 조항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의문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방송 4사에 ‘불공정보도 시정촉구’ 공문을 보낸 것은 옳은 행위라고 보기 어렵지만 방송이 그 원인 제공을 한 측면에 대해 더 큰 반성이 있어야 한다.
39회 방송의 날, 자축보다는 자책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방송으로 거듭나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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