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장관은 24일 MBC라디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밝힌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제네바 합의 파기 발언에 대해 “전달과정에서 거두절미하고 얘기가 건네져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제네바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고 하는데 북한이 그런 식으로 그냥 거두절미하고 했겠는가”고 반문한 뒤 “이렇게 저렇게 된다면 제네바 합의의 운명도 예단할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북한이 어떤 전제나 조건을 달았는데 켈리 차관보가 거두절미하고 전달한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여하튼 정 장관의 발언은 공개적으로 켈리 차관보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켈리 차관보는 19일 기자회견 때 모두 발언을 통해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무효화된(nullified)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했다”고 밝혔고 그의 발언은 우리 정부와 협의를 거친 것이었다.
정 장관은 제8차 장관급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귀환한 23일에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이날 낮 기자들과 만나 북한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소개하면서 강석주 제1부상이 핵개발을 시인한 이유에 대해 “켈리가 위압적으로 나와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스쳐 지나가며 한 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켈리 차관보는 “처음에는 부인하던 북한 관계자들이 나중에 단호하게 인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공개했다. ‘스쳐 지나가는 식’이 아니라 ‘단호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정 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24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북한의 비밀 핵개발 의혹이 과장됐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북한 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한미간에는 긴밀한 공조를 통해 상호 협력하고 있다”며 한미 공조에 이상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정 장관의 발언뿐 아니라 17일 북한이 새로운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했다는 한미 양국의 발표가 나온 뒤부터 햇볕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청와대와 정부 고위 당국자들 입에서는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는 발언들이 적지 않게 흘러나왔다.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도 23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대선후보와의 ‘6자회동’ 자리에서 “미국으로부터 8월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첩보를 전달받았다”며 “그때는 일본 총리의 북한 방문과 남북한 철도연결착공이 진행되는 시기였다”며 미국의 문제 제기 시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두 사람의 발언은 궁지에 몰린 북한을 옹호하면서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또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북한 다루기 방식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불편한 심사를 대신 표현한 것 아니겠느냐”라는 해석도 나왔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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