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7, 8일 이틀 동안 열린 본회의에서 의결정족수에 미달한 상태에서 40여건의 법안을 처리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헌법 49조에 정해진 표결 절차를 지키지 않은 명백한 위헌적 행위”라는 데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이들은 절차상 하자가 있는 이들 법안에 대해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개인이나 단체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낼 경우에는 해당 법률의 무효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 재의결을 하지 않으면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인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의결정족수를 지키지 않고 통과시킨 법안은 헌법에 정해진 표결 절차를 위배했기 때문에 당연히 무효라는 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만약 이들 법률로 인해 법적인 의무가 부과되는 이해당사자는 충분히 헌법소원을 낼 수 있고,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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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 강원택(康元澤·의회정치) 교수도 “의결정족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통과된 법안은 그 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며“우리 국회는 본회의를 형식적 절차로만 간주하고 있으나 미국 같은 선진국 의회에서는 개별 의원의 출석 여부나 찬반 의견 등을 모두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김의영(金義英·정치학) 교수는 “의결정족수가 미달된 상태에서 법안을 처리했다는 것은 입법과정에서 큰 흠결을 남긴 것이다”며 같은 의견을 보였다.
숙명여대 이영란(李榮蘭·법학) 교수는 “선진국의 의회에서는 아주 작은 소위원회의 회의라도 의결정족수 같은 절차상의 적법성을 엄격하게 지킨다”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회적 합의는 무효라는 인식이 뿌리깊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박찬욱(朴贊郁·정치학) 교수는 “입법 과정의 정당성 차원에서 보면 대단히 문제가 많고, 정족수에 미달했으면 당연히 회의를 중단시켰어야 했다”며 “이번에 통과된 법을 무효화할지 여부는 이같은 정당성 문제와 국회법 위반 여부에 대한 명확한 확인, 지금까지의 관행 등을 따져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정기국회 회기를 사실상 1개월이나 단축한 데 대해서도 따가운 비판이 나왔다.
이만섭(李萬燮) 전 국회의장은 “아직도 정기국회 회기가 한 달이나 남아 있는데 대선을 이유로 하루에 70, 80건씩 서둘러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 데서 빚어진 일이다”며 “국회의원들이 모두 대선에 출마한 것도 아닌데 국회는 국회대로 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석연 변호사도 “헌법에 정기국회 회기는 100일로 정해놓았는데도 대선을 이유로 회기를 마음대로 1개월 줄여놓고 법안을 부실처리한 것은 직무유기이다”고 말했다.
96년 12월 노동관계법 변칙 처리 등 과거 날치기 법안과 관련해 표결절차를 문제삼은 헌법소원이 10여 차례 제기됐고, 이중 2, 3건이 ‘의결정족수 미달’을 문제삼았으나 헌법재판소가 다른 이유로 이를 각하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내린 적은 없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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