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폐연료봉 저장소 봉인 제거…北 '마지막 核카드' ?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8시 20분


영변 核연료봉 공장-북한이 23일 저장시설 봉인을 제거해 논란이 되고 있는 연료봉을 제작한 공장 전경. 이 사진은 국제원자력기구가 92년 5월 촬영했다.워싱턴로이터뉴시스
영변 核연료봉 공장-북한이 23일 저장시설 봉인을 제거해 논란이 되고 있는 연료봉을 제작한 공장 전경. 이 사진은 국제원자력기구가 92년 5월 촬영했다.워싱턴로이터뉴시스
북한이 폐연료봉 저장시설뿐만 아니라 핵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의 봉인까지 제거하고 감시카메라도 작동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북한 핵문제가 종전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북한이 아직은 수조 속의 폐연료봉을 꺼내 핵무기를 제조할 움직임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8000여개의 폐연료봉을 묶어 놓은 철선의 봉인과 방사화학실험실에 손을 댄 것은 여차하면 핵무기도 제조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어서 그동안의 위협조치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북한은 12월 12일 핵동결조치 해제를 선언하면서 줄곧 전력생산을 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해 왔고, 한미 양국도 북한이 다른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한 어느 정도 시간 여유가 있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폐연료봉을 꺼내 재처리할 수 있는 직전 단계까지 갔다는 것은 한미 양국이 볼 때는 ‘넘어서는 안될 금지선(Red Line)’을 넘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식으로든 폐연료봉과 방사화학실험실에 손을 댄다는 것은 핵무기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예비동작’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이 비록 단계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긴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배경이다. 북한으로서는 이 같은 조치들이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결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도박카드를 꺼낸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한미 양국 정부도 북한이 이처럼 신속하게 핵시설 재가동 움직임에 나서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북한이 21일 영변의 5㎿ 원자로 봉인을 제거한 뒤 최소한 1∼2개월 후에나 발전소 가동을 시도할 것으로 예측해 왔다. 북한이 한미 양국의 ‘의표’를 찌르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폐연료봉 묶음에 손을 댄 것으로 확인된 23일 외교통상부 이태식(李泰植) 차관보와 에번스 리비어 주한 미국대사관 공사가 긴급 협의를 가진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북한이 이처럼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은 북한이 제안한 불가침조약 체결 제안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꺼내든 협상촉구용 ‘벼랑끝 전술’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과 우리정부를 비롯한 주요 관계국들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계획을 우선적으로 폐기해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자세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12일 전격적으로 핵동결 해제 선언을 했지만 국제사회는 북한 지도부가 노리는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지도부가 내심 초조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93, 94년과 달리 북한의 이번 선택은 ‘오판’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평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조만간 이번 사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하고 유엔이 북한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통과시킨다면 강도 높은 대북 제재가 이어질 전망이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부정적 대북 인식 확산과 함께 한반도의 긴장감이 고조된다면 북한이 추진하려는 경제개혁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 핵문제 관련 주요 움직임
일시주요국 및 국제기구의 움직임
10.4북한 고농축우라늄 핵개발계획 시인
17한미, 북 핵개발 시인 공동발표
26로스카보스 한미일 정상회의, 북핵선포기 요구
11.14KEDO 이사회, 대북중유지원 중단결정
12.12북, 핵동결 해제 선언
13,14북, IAEA에 봉인 및 감시카메라 철거 요구
14IAEA, 북측에 핵안전조치협정 및 NPT 준수 촉구
21북, 영변 5㎿ 원자력발전소 봉인제거및 감시카메라 위치변경
22북, 폐연료봉저장시설 입구에 설치된봉인 제거
향후폐연료봉 인출? 북-미대화 재개?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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