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 교체사업 ‘또 후진’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서울에 사는 김모(35) 씨는 새로 나온 ‘가로형’ 번호판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올해 초 구입한 기아자동차 ‘로체’의 번호판을 바꾸려고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청에 찾아갔다가 마음만 상하고 돌아왔다.

구청 측에서 “10월 31일 이전 출고차량은 앞 번호판만 가로형으로 내 줄 수 있고 뒤 번호판은 구형 크기로만 발급하라는 건설교통부의 공문이 내려왔다”며 앞뒤 번호판 모두 가로형으로 발급 받으려던 김 씨의 신청을 거절한 것.

김 씨는 “건교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동차 후면 번호판 부착 부분이 가로형도 가능하도록 제작돼 있고 번호판 조명등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공무원들이 자신들 편의 위주로 업무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새 번호판, 항의 빗발

1일부터 새 번호판 교부가 시작된 이후 각 구청과 자동차등록사업소 창구에는 ‘기존 차량의 후면에도 가로형 번호판을 붙이도록 해 달라’는 민원인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건교부는 “기존 차량은 후면 번호판을 고정하는 봉인 볼트와 번호판 조명등의 위치가 맞지 않아 가로형을 부착할 수 없다”며 1일부터 번호판 부착 부분이 변경돼 출고되는 현대자동차 투스카니 베라크루즈 등 일부 차종만 가로형 부착을 허용했다.

10월 31일 이전에 출고된 차량은 전면 번호판만 가로형으로 교체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건교부 홈페이지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는 1일부터 건교부의 번호판 정책을 비난하는 글이 수천 건 올라 있다.

최근 출고된 상당수 차종은 후면에도 가로형 부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봉인 볼트의 위치만 약간 수정하면 부착이 가능한데도 무조건 개조를 막고 있다는 것.

이모 씨는 건교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봉인 볼트와 조명등의 위치가 가로형 부착에 맞는 독일산 차종인데도 신규 등록차량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조건 발급을 해 주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 번호판 교체사업 문제투성이

건교부의 번호판 교체사업은 2003년 시작부터 지금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건교부는 2003년 9월 야간에 잘 보이는 반사 번호판을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1000여 대에 시범 발급했다가 과속단속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 곧바로 도입 계획을 취소했다.

이어 2004년 1월에 지역명을 뺀 전국번호판을 내놓자마자 ‘숫자가 너무 크고 디자인이 형편없다’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운전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건교부는 미봉책으로 4개월 만인 2004년 5월부터 숫자 크기를 약간 줄여 디자인을 개선한 전국번호판을 보급했으며, 디자인을 전면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건교부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청회를 여는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2004년 7월 가로형 번호판 도입을 결정했으며 2005년 2월부터 경찰차 등에 시범 장착했다.

그러나 “가로형 번호판의 숫자 디자인이 너무 투박하다”는 지적에 다시 숫자 모양을 변경했고 이를 이달 1일부터 가로형과 기존형 2가지 형태로 나눠 보급하기 시작했다.

건교부의 갈팡질팡하는 번호판 정책 때문에 지난 3년간 번호판의 디자인이 5번 변경됐고 현재 운행 중인 차량에 붙어 있는 번호판은 모두 6종류가 됐다.

강모 씨는 한 포털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번호판 해프닝을 보면 한국 공무원들의 사고가 국민 평균 수준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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