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공교육과 사교육]한국 유아교육의 현실

  • 입력 2002년 9월 30일 18시 02분


공립유치원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북성유치원에서 원생들이 교사와 함께 즐겁게 수업을 하고 있다. - 권주훈기자
공립유치원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북성유치원에서 원생들이 교사와 함께 즐겁게 수업을 하고 있다. - 권주훈기자
《맞벌이 부부인 회사원 차모씨(34·여)는 아침마다 때문에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유치원에 다니는 5살짜리 아들을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살고 있는 친정 어머니 집까지 데려다 주고 회사에 9시까지 출근하려면 여간 마음이 조급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몸이라도 아플 때는 ‘회사를 그만둘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 내집을 마련하지 못해 선뜻 결심이 서지 않는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오전 수업을 하고 외할머니 집에서 놀면서 엄마가 퇴근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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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는 “퇴근 길에 아이를 찾아 오후 8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파김치가 된다”며 “ 돈도 문제지만 집 근처에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면서 취학 전 자녀의 양육 문제로 고민하는 맞벌이 가정이 많다. 어린이를 맡아주는 기관이 유치원과 어린이집 놀이방 등 보육시설로 나뉘어져 있고 운영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유치원이냐 어린이집이냐〓유치원은 3∼5세아를 대상으로 오전 반일제(3∼5시간)를 원칙으로 하고 8시간 이상 종일제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맞벌이 부부인 경우 오랫동안 아이들을 맡기는 데 부담이 있다.

반면 어린이집은 0∼5세 아동을 12시간까지 종일제로 장시간 보호하고 교육비도 유치원에 비해 다소 저렴하기 때문에 맞벌이나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유치원은 전국에 8308개가 있고 이중 사립이 4089개이지만 원생수는 전체 55만150명 중 78%(43만518명)가 사립에서 담당하고 있다.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은 2만97개가 있고 이중 1만8791개 사립에서 보육아 56만5617명의 86%(48만7473명)를 맡고 있다. 2세 미만까지 합치면 보육아동은 73만여명에 달한다.

▽무상교육 실태〓정부는 올해부터 저소득층의 만 5세아에 대한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점차 전체 5세아로 혜택을 늘릴 계획이다. 지금은 5세 아동의 20%인 13만4718명에게 수업료를 지원하고 있다. 유치원의 경우 공립은 1만7500∼3만500원, 사립은 10만5000∼10만9900원을 국가에서 대준다. 보육시설은 8만6000∼11만9000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 4인 가족 기준으로 월소득이 160만원 이하, 재산액이 5000만원 이하여서 실제 혜택을 받는 가구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또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유아미술학원 등도 탁아기능을 하고 있는 만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교육 전단계로 실시하는 정책이므로 사설학원에 대한 지원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통합 가능성〓정부는 교육인적자원부 소관의 유치원과 보건복지부 소관의 보육시설을 통합하는 방안을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부처 이견과 관련 단체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유치원과 보육시설을 유아학교로 통합하는 방안은 15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현재는 민주당 이재정(李在禎) 의원 등 43명이 발의한 유아교육법안은 유치원과 보육시설의 통합 및 유아학교 명칭 등 민감한 사안은 제외하고 초중등교육법과 유아교육진흥법에 관련된 조항을 떼내 법안을 만들자는 내용이다.

교육부는 선진국처럼 유아교육과 보호를 교육부로 일원화화해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전환해 공교육화하고 보육시설도 유아학교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체계적인 유아교육을 위해 정식 교육을 받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쳐야 창의적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두 기관을 통합할 경우 유아학교는 반일제이고 방학 때 아이들을 맡아줄 수 없어 학부모들에게 불편만 준다”며 “3세를 기준을 유아학교로 나눈다면 보육시설과 유아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학부모는 아침마다 두 기관을 방문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복지부는 “보육시설이 저소득층과 맞벌이부부의 아동을 보호하는데 현실적으로 유리한 만큼 현재대로 분리해 운영하는 것이 결국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통합 문제는 교육부와 복지부, 유치원과 보육시설, 전문가 집단도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 차이가 큰 사안이어서 당장 유아교육 체제를 바꾸기가 쉽지 않은 전망이다.

유치원·보육시설 현황 비교
구분유치원보육시설
근거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유아교육진흥법영유아보육법
목적유아에게 알맞는 교육환경을 제공해 심신의조화로운 발달 조장아동의 보호·교육과 보호자의 경제 사회적 활동 증진
내용유치원 교육과정-건강, 사회, 표현, 언어, 탐구생활보육 기본원칙-건강, 안전, 영양, 교육, 부모서비스, 지역사회 교류
대상3∼5세맞벌이부부 자녀 등 0∼5세
시간반일제 원칙(수업 연간 180일 이상)연장제(5∼8시간), 종일제 (8시간 이상) 가능종일제(12시간 기준)
비용부담보호자 부담 원칙저소득층 5세아 수업료 지원공립:월 1만∼4만원사립:월 10만원보호자 부담원칙저소득층:정부지원0∼4세 아동:10만6000명5세 무상보육:8만7000명
교육비 사립:9만~12만원(급식비 별도)공립:2만2000원·정부지원 시설-3세 이상 11만9000원, 2세 19만2000원,2세미만 23만2000원·민간시설 : 시도지사가 정한 범위 내
교사 대 아동 비율공립:1 대 19.2사립:1 대 18.53∼5세:1 대 202세:1 대 70∼1세:1 대 5
교사자격1급 정교사:자격 연수자, 대학원 졸업2급 정교사:대학 전문대 유아교육 전공자준교사:고졸자로 검정 합격자보육교사 1급:대학 전문대 관련학과 졸업보육교사 2급:보육교사 교육원(1년) 이수
관련학과유아교육학 관련 학과, 교사 자격증 부여보육학, 아동복지학, 사회복지학, 가정관리학, 유아교육학 등
기타 종사자보조교사간호사,영양사,취사원 등
개소 수(인원)8308개소(55만명)2만97개소(73만4000명)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유치원-어린이집 통합하자"▼

임재택

선진국들은 영유아의 보호와 교육을 단일 행정부처에서 통합 관리하는 일원화 체제이거나 만 3세를 기준으로 영아보육과 유아교육을 구분하여 각 부처에서 관리하는 연령 구분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유아기의 교육과 보호는 분리될 수 없는 통합적 개념으로 아이들은 물론 여성 취업 등 사회활동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3∼5세 아동을 위한 유치원은 교육인적자원부가, 0∼5세를 위한 보육시설은 보건복지부가 따로 관리하는 이원화 체제다. 이는 전업 주부의 자녀를 교육하기 위한 유치원과 취업 여성의 아동을 보호하는 보육소로 구분하는 일본 제도를 답습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 취업이 증가하면서 유치원과 보육시설의 차이가 사실상 없어졌는데도 2개 부처에서 중복 관리하는 것은 문제점이 많다.

3∼5세 유아 수를 고려하지 않고 시설을 인가 또는 신고제도로 전환해 유치원, 어린이집, 사설 학원, 놀이방, 선교원 등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난립하게 됐다. 유치원과 보육시설간에 원아모집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서비스의 질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또 조기 영어교육 등 검증받지 못한 교육을 무분별하게 시행하면서 유아교육은 피폐해졌고 영유아 관련 시설은 대부분 사립이어서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크다.

반면 3세 미만의 영아를 둔 부모들은 아이들을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어려움이 많다. 육아문제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거나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도 있다. 영아보육은 보육료 부담으로 인해 학부모와 운영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영유아 교육은 0∼2세 영아보육은 복지부 관할의 영아보육시설에서,3∼5세 아동은 유아학교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단계적으로 공교육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유아교육법 제정과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통해 행정체제를 개편하고 정부의 재정 투입을 보장해야 한다.

유아학교는 3∼5세 유아와 학부모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종일제와 상시운영 체제를 갖춰야 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적절한 절차를 거쳐 유아학교로 전환하면 된다.

영아보육은 현행 영아전담 보육시설, 놀이방, 소규모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 교사 인건비 전액과 시설 개보수비를 지원해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개혁 법안이 현 정부의 무능과 이익단체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진척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임재택 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목적-기능 달라 되레 역효과"▼

표갑수

최근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해 유아학교를 설립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아교육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제로는 유치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어린이집으로 전환하는 유치원을 방지하기 위한 ‘유치원 활성화 대책’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기본적으로 설립 취지가 다르다. 유치원은 교육의 필요성에 의한 조기교육 시설인 반면 어린이집은 부모의 취업이나 질병, 빈곤 등으로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나온 사회복지시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목적과 기능이 다른 두 시설을 통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양육기능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차원이라면 어린이집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낫다.

일본은 1926년부터 66년간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일원화하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패했고 현재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이원화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아동의 연령을 한 살 내려 국민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면 미국 호주 등의 국가처럼 초등학교에 유아학년을 두면 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면 일사분란할 것 같지만 많은 역기능이 우려된다. 우선 보육시설과 유치원을 통합해 획일화하면 부모의 다양한 양육방식과 소비자의 선택권이 무시된다. 또 유아학교에서 종일제(8시간)나 상시 운영을 한다고 하지만 취업여성의 요구나 교사의 근무여건으로 볼 때 쉽지 않다.

유아교육론자들이 주장하는 ‘행정의 효율성’도 마찬가지다. 유아학교로 편입되지 않은 유치원과 보육시설은 여전히 교육인적자원부와 보건복지부에서 이중 관리해야 한다.

또 0∼2세 아동 담당을 어린이집으로 한정한다면 수익성이 없어 영아보육시설 운영을 기피하게 돼 영아보육의 공백이 초래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유아교육 관련 전문가 중에서도 이런 법안의 내용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초등학교에 유아학년 제도를 둬 유아 공교육 체제를 이루거나 △유치원과 보육시설의 기능을 각각 강화해 현재처럼 이원적으로 유지 또는 △기존 유치원에 보육의 개념을 포함해 시설의 명칭을 어린이집으로 변경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아교육법을 제정해 여기에 보육의 개념을 포함한다는 것은 기존 영유아보육법의 법체계를 무시한 것으로 옥상옥(屋上屋)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표갑수 청주대 교수·한국영유아보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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