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끊었어. 사랑해….” 9월 8일 경기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 농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숨진 동두천소방서 이성우(38) 소방위가 아내 박모(38) 씨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이 소방위는 사고 전날 박 씨와 “내일 병원에 계시는 할머니께 함께 가자”고 약속했으나 끝내 지키지 못했다. 이 소방위 부부는 지난해 8월 교회 지인의 소개로 만나 올해 5월 ‘늦깎이’ 결혼을 했다. 남들보다 늦은 결혼이었기에 더 아껴 주며 살자고 다짐했던 이들에게 비극은 결혼 넉 달 만에 찾아왔다.》
소방관 처우개선은 말뿐
유족들 가슴에 남은 상처
그 아픔 아물 날은 언제…
박 씨는 “결혼한 후 얼마 안돼 남편이 ‘만약 죽더라도 시민을 위해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 말을 듣고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소리쳤는데, 이제는 그 말이 남편의 유언처럼 남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의 국가화재 통계에 따르면 1∼10월 화재에 따른 재산 피해액은 1924억 원이다. 그러나 소방관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이 기간 피해액은 훨씬 늘었을 것이다. 방재청이 추산한 화재 피해 경감액은 피해액의 20배를 웃도는 4조1962억 원이었다.
그 대신 이 소방위를 비롯해 경기 이천소방서 윤재희(28) 소방교, 경기 여주소방서 최태순(38) 소방장, 대전 동부소방서 라민수(39) 소방위 등 총 4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이들 덕에 많은 국민이 생명과 재산을 지켰지만 순직 소방관 4명의 가족에게는 큰 아픔과 고통이 남았다. 이들은 전화 벨소리에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가족만이 아니다. 소중한 선후배를 잃은 동료들의 가슴에도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11월 28일 경기 이천시 마장면 CJ 이천공장 화재 현장에서 숨진 윤 소방교의 아버지는 몇 년 전 끊은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또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고 윤 소방교의 작은아버지 지석(48) 씨가 전했다.
지석 씨는 “매일 두 번씩 꼬박꼬박 전화하던 아들을 잃어버린 형수님이 더욱 힘들어한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이 오죽하겠느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 소방교는 지휘차량의 운전을 맡았지만 자진해 화재 진화작업에 나섰다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변을 당했다.
내년 2월 윤 소방교와 결혼할 예정이던 약혼녀 A(25) 씨는 결국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주위 사람과 연락도 끊었다.
최 소방장도 CJ 이천공장 화재에서 숨졌다. 소방서로 복귀하던 소방차가 고속도로에서 고장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차량을 정비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순찰차에서 내리는 순간 마주 오는 차량에 변을 당했다. 최 소방장의 부인 김모(34) 씨는 “네 살배기 딸이 지금도 ‘아빠 왜 안 와’라고 물을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9월 11일 차량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라 소방위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대전시에선 라 소방위의 부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줬으나 정신적 충격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현재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윤대원(33) 소방사는 “매번 소방관의 순직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3교대 근무만 해도 몇 년째 국회에서 표류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1945년 광복 이후 화마(火魔)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소방관은 275명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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