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3총사 “6개월 태안봉사 마칩니다”

  • 입력 2008년 6월 20일 03시 01분


“태안은 제2의 고향”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를 겪은 충남 태안군에서 6개월 동안 급식봉사활동을 한 모하붑 이슬람, 나즈무스 샤다트, 후마윤 카비르모 씨(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등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 사진 제공 외국인노동자의 집
“태안은 제2의 고향”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를 겪은 충남 태안군에서 6개월 동안 급식봉사활동을 한 모하붑 이슬람, 나즈무스 샤다트, 후마윤 카비르모 씨(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등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 사진 제공 외국인노동자의 집
본보 ‘식객’에도 소개돼 태안군 소원면 의향리 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사연은 본보 인기연재 만화인 ‘식객’에 소개되기도 했다. ▷본보 4월 30일자 A27면 참조
본보 ‘식객’에도 소개돼 태안군 소원면 의향리 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사연은 본보 인기연재 만화인 ‘식객’에 소개되기도 했다. ▷본보 4월 30일자 A27면 참조
■ 방글라데시인 근로자 이슬람-샤다트-카비르모 씨

“세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고생을 엄청나게 했어요. 이제 떠난다니 고맙고 서운하고 그러네요.”

기름 유출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김관수 이장은 오랜 이웃을 떠나보내는 기분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마을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20일 떠나기 때문이다.

그는 “돼지고기와 떡, 막걸리를 준비해 잔치를 열고 감사패도 전할 예정이지만 아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근로자 모하붑 이슬람(28) 씨와 나즈무스 샤다트(26) 씨, 후마윤 카비르모(34) 씨는 기름 유출 사고 10일 만인 지난해 12월 17일부터 지금까지 급식봉사를 했다.

이들은 매일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 밥과 국을 준비하고 점심 배식과 설거지를 했다. 급식 재료는 이들의 자원봉사를 주선한 외국인 노동자의 집(서울 구로구 가리봉동)과 태안군이 제공했다.

자원봉사가 줄을 이은 4월까지는 이른 아침이나 점심시간을 지나 찾아오는 자원봉사자에게 라면이라도 끓여 내야 했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카비르모 씨는 가구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손목 때문에 병원을 오가면서도 봉사를 멈추지 않았다.

급식소 주변 온수통에는 ‘겁피물(커피물)’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철자는 틀렸지만 정성이 들어간 이들의 ‘작품’이다.

김 씨는 “나중에는 주민들이 마을에 숙소를 잡아주고 난방비와 전기료를 줬지만 처음 한동안은 숙소가 마땅치 않아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겨울바람을 헤치고 40분씩 걸어 왔다”고 고마워했다.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한국의 재난이 남의 일 같지 않았고 그동안 돈은 벌지 못했지만 많이 깨끗해진 바다를 보니 보람이 느껴진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샤다트 씨는 “일손이 너무 달리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올라갈 수 없었어요. 회사에 다시 휴가 연장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예 회사를 그만뒀어요”라고 말했다.

이슬람 씨는 “끝없이 이어지는 자원봉사자의 물결을 보면서 한국민의 나라사랑 정신과 저력을 실감했고 자식처럼 사랑해준 주민들을 대하면서 고향에 돌아온 듯한 행복감에 젖었다”고 즐거워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송 목사는 “이들이 한국인의 자원봉사 활동을 보고 스스로 급식봉사도 하면서 나눔의 가치를 찾은 것 같다. 언젠가는 귀국하겠지만 당분간이라도 한국생활을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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