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부녀회와 함께 마련한 술과 음식으로 손님들을 대접하던 레니카 씨는 "이렇게 멋진 집을 갖게 될 줄 몰랐다"며 싱글벙글했다. 초등학교 2학년 수윤이와 여섯 살짜리 애빈이 자매는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수윤이는 꽃이 그려진 분홍색 커튼을 가리키며 "우리 엄마랑 같이 골랐다"며 자랑했다.
잔치가 무르익자 김용각(68) 이장이 "집들이 소감을 들어보자"며 레니카 씨를 불렀다.
"믿고 의지하던 남편이 떠난 빈자리는 너무 컸습니다. 딸 둘을 저 혼자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는데…."
주머니 속에서 편지를 꺼내 읽던 레니카 씨는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멋진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장님, 남 사장님, 면사무소 계장님 감사합니다."
레니카 씨는 9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왔다. 딸 둘을 낳고 화목하게 살던 레니카 씨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지난해 10월. 소 값이 떨어지고 빚이 늘자 남편이 극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은 것이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레니카 씨는 설상가상으로 살던 집까지 비워줘야 할 형편이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었다. 수윤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모금운동을 벌이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온정을 보탰다.
광주에서 사업을 하는 남장희(62) 씨가 보낸 1050만 원으로 살고 있는 집터를 사들여 등기를 했다. 하지만 낡은 집이 문제였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어 비가 새고 창문은 떨어져 나가 비닐로 바람을 막을 정도였다.
레니카 씨의 딱한 사정을 안 담양군이 13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자 남 씨는 650만 원을 또 내놨다.
필리핀에서 시집와 레니카 씨와 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조안 콤프라(32) 씨는 "주민들이 집을 지을 때 자기 일처럼 나서 담장을 쌓고 텃밭을 만들어 주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집들이 선물도 넘쳐났다.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레니카 씨 집을 방문했던 GS칼텍스 광주저유소 빛고을 사회봉사단은 탱크로리를 몰고 와 난방용 보일러에 기름을 가득 채워줬다.
▶본보 지난해 12월25일자 A12면 참조
“이웃 희망선물에 새꿈이 싹텄네요”
담양읍 LG전자에서는 가스레인지를 기증하고 남 씨는 장롱과 화장대를 선물했다.
방 두 칸에 화장실이 딸린 49.5㎡짜리 보금자리를 갖게 된 레니카 씨는 고마움의 표시로 시루떡을 돌렸다.
레니카 씨는 "이국땅에서 꿈과 희망을 갖게 해 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며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담양=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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