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짓돈 기부천사들 “베푸는 맛에 배가 불러요”

일러스트=김수진 기자

■ ‘큰손’ 후원 줄었지만 소액 후원은 증가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 위해…”

돌잔치 비용으로 모은 돈 이웃돕기에 선뜻

‘아프리카 아기 살리기 모자’ 작년의 2배 팔려

전문가 “나눔이 나눔을 낳는 문화 정착 기대”

“경제가 너무 어려워 힘들어하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돌잔치 비용을 후원금으로 냈다는 영수증은 잘 보관하고 있다가 아이가 철이 들었을 때 보여줄 겁니다.”

2006년 사회자선단체 굿네이버스 소액 후원 프로그램인 ‘100원의 기적’에 참여했던 민훈(30·사회복지사) 씨. 그는 10월 아이의 돌잔치 비용으로 모은 돈의 80%를 “어려운 분들에게 써달라”며 굿네이버스에 기부했다.

“학원을 운영하며 어려운 아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경제 위기가 더 심해져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면 조금이라도 후원금을 더 늘리고 싶습니다.”

경기 부천시 소사구에서 미술학원을 운영 중인 방미숙(43) 씨. 3년 전부터 매달 두 군데의 사회자선단체에 각각 1만 원씩 후원해온 그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오히려 기부금을 더 늘리겠다는 생각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대부분의 국민이 ‘금융자산 폭락’, ‘구조조정 위험’ 등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향해 내민 ‘작은 손’은 여전히 따뜻하다.

○ 따뜻한 기부의 손

8일 동아일보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아대책, 세이브더칠드런, 굿네이버스, 부스러기사랑나눔회 등 주요 사회자선단체에 확인한 결과 ‘큰 손’ 기부자인 기업들의 후원금은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소액 기부는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에는 전체 기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액기부가 줄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소액기부 자체가 늘고 있는 것.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걸려온 한 통화당 2000원인 ARS모금 전화는 4만7607건.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만1216건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10만 원 미만 소액 후원자도 지난해에 비해 40% 정도 늘었다.

저소득층 어린이를 후원하는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역시 소액 개인 후원자가 든든한 힘. 5000원 이상을 후원하는 개인 후원자가 지난해에 비해 57%가량 증가했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이경림 대표는 “경기가 어려운데도 이런 소액 후원자들의 증가가 지속된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 해외로 전파되는 소액 후원

온정의 작은 손길은 국경을 넘기도 한다. 13년 전부터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해외어린이 결연사업’을 추진 중인 기아대책은 환율폭등 때문에 불가피하게 매월 2만 원의 후원금을 3만 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후원자 1만6000명 중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올려도 좋다”고 답했다.

국제 어린이보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아프리카 말리의 저체온증 신생아를 돕기 위해 벌이고 있는 ‘아기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의 경우 모자뜨기 세트(하나에 1만 원)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11월∼올해 2월 5000여 개 팔렸지만 올해는 10월부터 판매를 시작해 지금까지 벌써 1만 개 이상이 팔렸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가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난에도 소액기부가 끄떡없는 것은 나눔의 문화가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라며 “경제난이 계속되면 주춤할 수도 있지만 이제 나눔이 나눔을 낳는 현상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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