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넘게 도피중 붙잡혀 노인복지관 넘겨져
“불효 막심” 깨닫고 의무시간 채운뒤 계속 봉사
함께 봉사명령 받은 동료들도 잇달아 자원 나서
‘봉사명령’으로 봉사에 눈을 뜨게 될 줄을 그는 몰랐다. 지난해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뒤 봉사가 싫어 도피생활을 했던 김춘호(34) 씨. 마지못해 시작한 봉사에서 새 삶을 발견한 것이다.
2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음종합사회복지관 급식소에서 만난 김 씨는 앞치마에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은 채 대형 밥솥을 씻고 있었다. 주방장은 그를 소개하며 “봉사명령 기간이 끝난 뒤 불쑥 복지관에 나타났는데 이젠 저 아저씨 없으면 급식소가 안 돌아간다”며 껄껄 웃었다.
김 씨가 이 복지관을 처음 찾은 것은 10월 초. 지난해 사회봉사명령을 받고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봉사냐”며 8개월 넘게 보호관찰소 직원들을 피해 다니다 9월 검거돼 복지관으로 넘겨졌다.
억지로 시작된 의무 봉사가 즐거울 리 없었다. 김 씨는 하는 둥 마는 둥 일하며 틈만 나면 ‘짱박히는’ 천덕꾸러기였다. 하지만 식사를 마친 노인들이 건네는 “총각, 정말 고마워”라는 따뜻한 한마디가 그의 감춰진 효심을 자극했다.
2년 전 김 씨는 홀어머니를 잃었다. 봉제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며 두 형제를 키운 어머니에게 김 씨는 속만 썩이는 장남이었다.
그는 “제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노인들을 볼 땐 생전 어머니한테 밥 한 끼 차려드리지 못한 게 한이 된다”며 “식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깃국을 담아주면서 여러 번 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말했다.
160시간의 봉사명령 시간을 다 채운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일 김 씨는 복지관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자원봉사’였다. 어머니에게 못 다한 효도를 봉사로 대신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일주일에 5, 6차례 자원봉사를 나가면서 김 씨의 일상도 바빠졌다. 직장인 사우나에서 목욕탕관리를 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그는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7시까지 일을 한다. 한창 깊은 잠에 들어야 할 낮 4시간을 봉사에 할애하고 있다. 그는 “평소 7시간 자다가 요즘은 3시간 정도 자는데 잠까지 줄여가며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건 평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 씨가 봉사명령을 받고 배치된 후배 봉사자들을 설득해 일을 주도하면서 복지관 분위기도 바뀌었다. 시간만 때우다 인사도 없이 사라지던 일부 봉사자들이 정해진 봉사시간을 넘겨서도 일손을 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김 씨와 함께 봉사명령을 받았던 다른 봉사자들도 잇달아 자원봉사자로 변신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목욕봉사를 하는 한재호(38) 씨는 “악취가 나는 방에서 몸 성한 곳 없는 노인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걸 보면 내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며 “목욕을 마친 노인들이 내 두 손을 꼭 붙잡고 방긋 웃을 땐 세상에 대한 원망이 싹 사라진다”고 전했다.
23일 의무봉사를 마친 뒤 사흘 만에 복지관을 다시 찾은 조상준(34) 씨도 “사회 어디를 가나 죄 지은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봉사하는 동안에는 ‘내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란 뿌듯한 마음이 들어 그 맛에 중독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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