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관심 10년… 희망 ‘주렁주렁’

  • 입력 2009년 5월 5일 02시 56분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서울변호사회 소년소녀가장돕기 1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대표인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지방변호사회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서울변호사회 소년소녀가장돕기 1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대표인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지방변호사회
서울 변호사회 소년소녀가장돕기 2273명에 月 10만원씩

절망 딛고 웃음 찾은 아이들 “다음엔 우리도 꼭 도울래요”

미란이(가명·13)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새엄마에게 매를 맞을 때마다 집 근처 교회에 숨어서 잠들곤 했다. 배가 고파 잠이 깨면 동네 가게에서 빵이나 우유를 얻어먹었다. 하루는 새엄마를 피해 뛰쳐나왔지만 교회 문이 닫혀 길거리를 떠돌다 경찰서까지 가게 됐다. 딱한 사정을 들은 경찰은 지역의 한 사회복지사에게 미란이를 맡겼다. 사회복지사는 곧바로 서울변호사회가 주관하는 소년소녀가장돕기 캠페인에 미란이를 추천했고, 그 덕분에 매달 10만 원씩 후원을 받게 됐다.

이후 미란이의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병원 치료도 받고 학교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미란이는 최근 서울변호사회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변호사님 덕분에 읽고 싶은 책도 사보고 다시 웃게 됐어요. 국어 선생님이 돼서 꼭 보답할게요”라고 적혀 있었다.

미란이처럼 서울변호사회의 후원을 받고 있는 130여 명의 학생들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서울변호사회 소년소녀가장돕기 10주년 기념식’에 모였다. 이들은 감사의 글을 모아 서울변호사회에 전달했고, 기념식 후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들과 경기 용인 에버랜드 놀이동산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처음 에버랜드를 찾은 현민이(가명·12)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손을 꼭 붙들고 종일 곳곳을 쏘다녔다. 장난기가 가득한 현민이는 이날 “보내주신 장학금으로 게임을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문제집을 샀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더 많은 사람들 도울게요”라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말 소년소녀가장 학생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시작된 이 캠페인은 10년 동안 2273명의 학생을 도왔다. 후원금만 총 29억5610만 원에 달한다. 10년간 한결같이 이어진 후원은 이제 열매를 맺고 있다.

고교 3년 동안 매달 10만 원씩 후원을 받은 임진석 씨(가명·20)는 지난해 서울의 한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임 씨는 10여 년 전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어머니마저 알코올에 의존하면서 소년가장으로 여동생을 돌봐야 했다. 매달 70만 원 안팎의 기초생활보장급여로는 세 식구가 먹고살기에도 빠듯했다. 유일한 ‘과외’인 EBS 강의도 인터넷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끊어야 했지만 서울변호사회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놓았던 책을 다시 잡게 됐다.

임 씨의 원래 꿈은 성형외과 의사였다. 하지만 고교 시절 진로를 바꿔 법대에 진학했다. 그는 “변호사님의 작은 관심이 꿈을 잃었던 나에겐 아버지처럼 큰 힘이 됐다”며 “변호사가 돼서 받은 것만큼 갚으며 살겠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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