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했다” 친구 집단폭행 살해후 한강에 버려
2명 구속 4명 영장신청
엽기적 살해 방법 만화서 모방
22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노후한 주택들이 이어진 골목 사이사이에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뻗어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 동네 한쪽은 오전 시간임에도 음침했다. 한국과 그리스의 월드컵 첫 경기가 열리던 12일 10대들이 모여 친구를 살해한 가해자 한 명의 집도 그곳에 있었다.
이웃 주민들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얼마 전에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10대 네댓 명이 여자애를 때리고 있더라고요. 때리다가 계단 위로 끌고 올라가던데 한 여자애는 ‘먹을 것도 다 주는데 왜 도망 가냐’고 소리를 지르고. 워낙에 동네에 10대 무리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 시신 잔인하게 훼손한 10대
10대 청소년들이 또래 10대 여학생을 폭행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린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2일 자신들에게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김모 양(15)을 폭행, 살해하고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한강에 버린 혐의(살인 등)로 정모 군(15)과 최모 양(15)을 구속하고 안모 양(16)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모 군(19)에 대해서는 시신 유기를 주도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 양, 안 양, 윤모 양(15) 등 3명은 9일 ‘집이 비었다’며 홍은동 최 양의 집으로 피해자 김 양을 불렀다. 인터넷 메신저로 알게 돼 가출할 때마다 어울리며 2년 남짓 알고 지낸 이들이었지만 김 양이 ‘행실이 나쁘다’며 자신들의 흉을 본 것을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지면서 김 양에 대한 주먹질이 시작됐다. 최 양의 남자친구였던 정 군도 합세하면서 무릎을 세운 ‘니킥’을 가하는 등 폭력은 점점 거세졌다. 심지어 피해자 김 양의 남자친구 이모 군(15)도 폭행에 가담했다. 도배 일을 하던 최 양의 부모가 지방에 가 있어 감시하는 어른이 없었던 가운데 이들은 나흘 동안 먹고, 자고, 때리고를 반복했다. 이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점점 강도가 세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몸을 구타당한 김 양이 숨진 것은 12일 저녁. 이들은 친구의 죽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하며 시신 처리 방법을 의논하다 무거운 물체를 달아 한강에 버리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강에서 수심이 가장 깊다는 양화대교 부근을 유기 장소로 골랐다. 이들은 시신에 10원짜리 노잣돈을 넣어주고 이쑤시개를 불태우는 등 ‘간이 염(殮)’을 하기도 했다. 시신을 옮기기에 너무 무겁다는 얘기가 나오자 이 군(19)이 케이블TV 탐정만화의 장면을 떠올려 “혈액을 빼내 무게를 줄이자”며 목과 아킬레스힘줄을 훼손하고 6명이 집 다용도실에서 시신을 거꾸로 들어 피를 뺐다.
○ 음란·폭력물 쉽게 접해 10대 범죄 잦아
이 군(19)과 정 군, 안 양은 김 양의 시신을 벽돌, 시멘트 덩어리와 함께 담요에 넣어 13일 오전 6시 반경 택시를 타고 양화대교로 가 강물에 던졌다. 이들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택시 운전사에게 “축제 때 사용할 조각상”이라고 둘러대는가 하면, 경찰이 혹시라도 조사를 시작하면 ‘김 양이 종적을 감췄다’라고 하자고 말을 맞추는 등 태연함을 보였다. 이들은 범행 직후에도 다시 최 양의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으며 윤 양은 교회에도 나갔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부모가 없거나 이혼한 결손가정 아이들로, 학교도 자퇴 또는 장기 결석 중이었다”면서 “범행은 엽기적인데 정작 본인들은 얼마나 큰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영실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이 음란물폭력물 등을 쉽게 접하면서 모방이나 충동범죄가 더욱 잦아지고 있다”며 “아이들, 특히 방임된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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