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을 운영하며 잘나갔던 류모 씨(56)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사업에 실패해 빚더미에 올랐다. 류 씨는 돈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 이혼한 뒤 홀로 대학에 다니는 자녀 2명을 키우며 막노동까지 했지만 빚은 줄지 않았다. 설을 앞두고 근심이 깊어가던 류 씨는 이자라도 갚을 생각에 빈집털이를 결심했다. 훔친 물건을 팔아 설 세뱃돈이라도 줘 가장 노릇도 하고 싶었다.
‘초짜 도둑’ 류 씨는 설 연휴인 21일 범행 장소로 서울 강남구 소재 5층 아파트를 골랐다. 옥상 난간이 낮고 지은 지 30년이나 돼 방범시설이 허술할 것 같았다. 류 씨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옥상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내려갔지만 배가 나온 중년에겐 범행이 버거웠다. 창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난간을 붙잡은 손에도 점점 힘이 빠졌다. 망치와 드라이버를 담은 배낭도 그의 어깨를 눌렀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인기척을 느낀 집주인은 류 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류 씨에겐 화려한 도주도 딴 나라 이야기였다. 있는 힘을 다해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전선에 발이 걸려 ‘쿵’, 비상계단으로 도망치다 가방을 밖으로 떨어뜨려 ‘쿵’. 어설픈 도둑의 연이은 ‘쿵’ 소리에 류 씨의 위치를 파악한 경찰은 손쉽게 그를 붙잡았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류 씨를 절도 미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현장에 출동한 한 경찰은 “형편이 어려워 빈집털이를 택했지만 중년의 류 씨에겐 무모한 시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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