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해’처럼… 생활고 조선족 꾀어 “K사장 보내버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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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사장 청부살인 3명 구속
5억대 소송 벌인 前 사업파트너, 브로커에 “4000만원 줄테니…” 의뢰
일자리 찾던 무술고수 옌볜 동포… 넉달간 기회 엿보다 흉기로 살해

서울 강서구 방화동 살인사건의 용의자 김모 씨가 피해자 경모 씨를 살해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사건 현장 인근에서 사전 답사를 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서울 강서구 방화동 살인사건의 용의자 김모 씨가 피해자 경모 씨를 살해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사건 현장 인근에서 사전 답사를 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경○○ 사장님이시죠? 죄송합니다.”

3월 20일 오후 7시 18분 서울 강서구 방화대로의 자신의 사무실에서 퇴근하던 경모 사장(59·K건설)이 칼에 찔렸다. 경 사장은 ‘미안하다’는 범인의 말과 함께 흉기로 가슴과 옆구리, 목 등을 찔려 사망했다. 7개월 동안 미궁에 빠졌던 이 사건의 범인이 영화 ‘황해’의 주인공처럼 살인 청부를 받은 중국동포인 것으로 밝혀졌다.

○ 살해 성공하자 ‘월척 낚는 사진’ 보내


15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공수도 등 무술 20단인 중국동포 김모 씨(50)는 당시 생선 손질용 뼈칼(길이 28cm)로 경 사장을 7차례 찔렀다. 지난해 11월부터 무려 4개월 동안 피해자 사무실 주변을 자전거로 탐색하다 범행 당일 기회를 잡고 실행에 나섰다. 김 씨는 경 사장이 숨진 것을 확인하고 오후 8시 13분 청부 살인 브로커 이모 씨(58·세계무에타이킥복싱연맹 이사)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여기엔 낚시로 물고기를 낚아 올린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중국동포 청부 살인’은 S건설 이모 사장(58)의 지시에서 시작됐다. 이 사장은 살해당한 경 사장과 2006년 7월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가 사업비 5억 원을 놓고 4년 동안 소송을 벌였다. 이 사장이 토지매입 용역계약을 체결했다가 매입을 다 하지 못해 계약이 파기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 사장은 그동안 들어간 사업비 5억 원을 요구하며 소송을 내 1심에선 승소해 돈을 받아냈지만 항소심에서는 패소했다. 이 사장은 경 사장에게 5억 원을 돌려주지 않다가 경 사장으로부터 사기 혐의 등으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당했다. 지난해 9월 초 이 사장은 브로커 이 씨를 찾았다. 이 사장은 “보내버리려는 사람이 있는데 4000만 원을 줄 테니 (범행을 할 만한)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했고 김 씨가 선정됐다.

김 씨는 중국 옌볜의 한 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일하다 2011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생활고를 겪던 지난해 10월 초 중국의 한 체육행사에서 만난 이 씨가 “4000만 원을 줄 테니 사람을 죽여 달라”고 하자 거절하지 못하고 착수금 300만 원을 받았다.

당초 ‘목표’는 경 사장 회사의 소송 담당자인 홍모 씨(40)였지만 이미 퇴사한 홍 씨를 찾을 길이 없었다. 김 씨가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보고하자 브로커 이 씨는 “시간 없으니 사장이라도 먼저 보내라(죽이라)”고 지시했다.

○ 걸음걸이 분석으로 붙잡은 범인

경찰은 이 사건 발생 후 인근 폐쇄회로(CC)TV 총 120여 대를 정밀 감식했다. 이를 통해 3월 3일부터 범행 당일까지 자전거를 타고 현장을 계속 배회하던 김 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김 씨는 발끝을 가운데로 모아 걷고, 굽이 높고 뾰족한 검정 구두를 신고 있었다. 경찰은 보행 자세와 구두가 유사한 김 씨가 사건 인근 현금인출기에서 2만 원을 인출한 사실을 밝혀내고 김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등으로부터 “걸음걸이가 유사하다”는 결과도 통보받았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살인 성공 보수로 총 310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한국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며 범행을 모두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브로커 이 씨는 “(김 씨에게) 살인을 의뢰한 적이 없고 단지 혼내주라면서 500만 원을 대가로 줬다”고 진술했다. S건설 이 사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중국동포 김 씨를 살인 및 살인예비 혐의로, S건설 이 사장과 브로커 이 씨는 살인교사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15일 이들의 신병과 수사자료 일체를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황해#걸음걸이#월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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