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대로 ‘다방 종업원부터 대학교수까지’ 모든 역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배우이기 때문이다.
4일 오후 5시경 경기 용인시 양지면 제일리 한 전원주택단지에서 심씨를 만났다. 이곳에서 영화 ‘아카시아’를 촬영하고 있었다.
1998년 영화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심씨는 오랜만의 영화 촬영이 무척 부담스럽다고 했다.
“세트장이 아닌 야외촬영이 대부분이었어요. 늘 시간에 쫓겨 밤샘 촬영을 밥 먹듯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더군요. 저도 나이를 먹었나 봐요.”
이럴 때 심씨가 찾는 곳은 용인시 해곡동 연화산 자락에 있는 와우정사. 영화 촬영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이날도 야간촬영을 앞두고 이곳에 들렀다.
“전 천주교 신자예요. 종교와 관계없이 조용한 산사를 찾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저기 보세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심씨는 중국과 스리랑카 등 20여개 국가가 기증한 3000여점의 불상이 봉안된 곳을 가리켰다. 각양각색의 불상이 가득했다.
1970년 해월법사가 건립한 와우정사에는 세계 최대의 와불(옆으로 누운 불상)과 높이 8m의 부처머리상, 88서울올림픽 당시 타종된 무게 12t의 ‘통일의 종’ 등 볼거리가 많다.
열반전에 오르는 계단 옆에 있는 ‘통일의 돌탑’도 눈에 띄었다. 세계 각국의 불교성지에서 가져온 돌 한 개 한 개를 모아 쌓았다는 돌탑은 아직도 미완성 작품이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예전엔 ‘예, 아니오’라는 말만 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는데 연예계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심씨가 와불 앞에서 지영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삼배를 올렸다.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소원을 말하려는 순간 지영 스님의 한마디.
“자기 자신을 위한 소원을 제일 먼저 말하면 안돼요!”
“영화 잘되게 해달라는 것도 안되나요? 여러 사람을 위한 건데….”
애교 섞인 심씨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넉넉하면 연화산(해발 304m)을 오르는 것도 괜찮아요. 한국민속촌이나 에버랜드 등에 올 때 한번쯤 들러보세요.”
심씨는 계속되는 ‘수다’ 속에 뼈있는 말도 했다.
“여배우 기근현상은 제작자와 관객들이 만든 거예요. 제작자는 뜬다 싶은 여배우를 질릴 때까지 써먹고 관객들은 빨리 싫증을 내요. 5년이나 쉬었는데 설마 심혜진이 싫증나진 않겠죠?”
1989년 데뷔해 24편의 영화에 출연한 중견배우 심씨는 해가 뉘엿거리자 다시 자신의 자리인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용인=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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