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명물]강화 마니산의 참성단

  • 입력 2002년 12월 13일 19시 25분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가 서려 있는 사적 제136호 참성단. 주말이면 수천명의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는다.사진제공 인천 강화군청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가 서려 있는 사적 제136호 참성단. 주말이면 수천명의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는다.사진제공 인천 강화군청
인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마니산 정상에 자리잡은 참성단(塹城壇·사적 제136호)은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다.

한반도 한복판에 자리잡은 참성단은 남쪽으로 한라산, 북쪽으로 백두산에 이르는 거리가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국체육대회 성화 채화지로 유명한 참성단은 단군(檀君)이 하늘에 한민족의 영화와 발전을 빌기 위해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참성단은 돌을 반듯하게 다듬어서 3m의 높이로 쌓았다. 제단으로 오르는 21계단은 2단으로 구분돼 있는데 아래는 4개, 위에는 17개의 계단이 설치돼 있다.

돌로 쌓인 제단 밑 부분은 하늘을 상징하여 둥글게, 윗부분은 땅을 상징해 정사각형(한 변 길이 1.98m)으로 만들어져 있다.

조선시대 말 김교헌(金敎獻)이 지은 사서 ‘신단실기(神檀實記)’에는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고 땅은 양(陽)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壇)을 물 한가운데 있는 산에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성단이 자리하고 있는 마니산은 조선 중엽까지도 강화도 본도와 떨어진 하나의 작은 섬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솟아 있는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이었는데 1664년 유수 조복양이 가릉포와 선두포에 둑을 쌓은 뒤 육지가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고구려 유리왕 19년에 사슴과 돼지를 잡아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고 있으며 국가 차원의 제사는 조선조 말까지 이어졌다.

일제는 참성단을 일종의 천문대로 취급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참성단 인근에 제궁(祭宮)이 있어 그곳에 제기(祭器)를 보관했는데 일본 경찰에게 뺏길 것을 걱정해 마니산 중턱에 묻어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 오랫동안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오다 광복과 더불어 참성단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6·25전쟁 때 제단 한쪽이 부서졌으나 화도면 주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광복 후 제사가 부활돼 강화군수가 제주가 되어 매년 개천절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53년부터 제단 앞 향로에서 선녀 7명이 거울을 이용해 태양열로 채화하거나 흐린 날에는 부싯돌로 불을 붙여 전국체전이 열리는 곳까지 운반주자를 통해 성화를 보내고 있다.

참성단의 정상 부근에는 918개의 계단이 이어진다. 산의 지형이 비교적 평탄해 쉬엄쉬엄 오를 수 있지만 정상의 암벽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

강화문화원 남궁신(南宮信·66) 향토사연구위원은 “평양에는 단군릉을 비롯한 단군 관련 유적지가 많이 있지만 남한 지역에서 참성단이 유일하게 단군 관련 사적지라는 의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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