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시에 있는 영업용 택시 회사인 한남기업에서 1992년부터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양정동씨(55)는 시인이다.》
어렵게 모은 돈을 투자해 한때 제법 큰 주산학원을 운영하며 넉넉하게 살았지만 1980년대 초부터 학원 수강생이 줄어 문을 닫았다. 그 후 다른 사업에 손을 댔다가 잇따라 실패하자 미련 없이 핸들을 잡았다.
“돈이 없어 어린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제 자신이 한심했어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40세가 넘도록 백지장 같은 인생을 살아온 자신과 닮은 하얀 원고지 앞에서는 어떤 가식도 있을 수 없었다.
주위에서 시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던 양씨는 연세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문학 수업을 받은 뒤 97년 5월 월간 문예사조에 ‘행복’이라는 시로 등단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봄밤에/ 비가 처마 밑에서 속살거릴 때/ 둘은 나란히 누워 /봄 밤비 잘도 온다/ 아니야 밤 봄비이지/ 뭐 봄 밤비이지/ 중년이 된 지금도 말싸움질 하지만…’
그는 택시 승객들에게 틈틈이 쓴 시를 복사해 나눠주고 있다. 차 안에서 시를 다 읽고 난 뒤 밝은 표정으로 내리는 손님들을 보면 하루의 고단함이 싹 사라진다는 것.
양씨는 또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생활형편이 어려워 보이는 노인들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는다.
몇 천원도 그에게는 소중하지만 가난의 고통을 절실하게 느껴 본 터라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26)을 둔 3급 지체장애인이기도 한 그는 매달 경기 여주군에 있는 장애인 수용시설 ‘라파엘의 집’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부천지역에서 열리는 체육대회 등 장애인들이 참가하는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해 물품을 운반하고 행사 진행 등을 돕는다.
24일 한국문인협회로부터 회원증을 받는다는 양씨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며 “그동안 쓴 시 180여 편을 묶어 올 가을에 시집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0일 경기도가 주최한 제23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모범장애인상을 받았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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