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천호동 423]불꺼진 紅燈

  • 입력 1998년 11월 11일 19시 30분


붉은 등(紅燈)은 없다. 반라의 모습으로 쇼윈도에 늘어 앉은 웃음 헤픈 여인들도 없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423. 청량리 미아리 용산 영등포와 더불어 서울의 ‘5대 사창가’에 들었던 홍등가이다. 96년 시작된 융단폭격식 집중단속으로 ‘없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10일 밤의 모습은 이랬다.

그러나 ‘정말 없어졌을까?’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외형상 이곳은 분명히 변했다. 흥청대던 골목은 가로등조차 꺼진 채 암흑천지다. 쇼윈도 격인 윤락업소의 유리문은 커튼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단속경찰만 어두운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철수한 오전 2시. 이곳의 밤은 다시 시작됐다. 술취한 남자들이 하나둘씩 골목을 누비고 “싸게 해줄게”를 외치는 업주들의 ‘몸장사’가 활기를 띤다. 흥정을 마친 남자들은 ‘개구멍’이라 불리는 작은 철문으로 사라진다. 현재 천호동의 윤락업소는 40여개. 여기에 2백여명의 ‘아가씨’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96년 대대적인 단속 시작전 1백70여개에 1천3백여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든 규모다. 그러나 준 만큼 그들이 전업한 것은 아닌 듯싶다. 여기를 떠난 여인들이 대부분 단란주점이나 시외곽의 홍등가로 진출했다는 이곳 사람들의 말로 미루어 짐작한 것이다.

단속만이 능사가 아님이 이미 수천년 역사를 통해 증명된 매춘. 그 매춘을 보는 시각과 해결방안도 세월이 가며 바뀌고 있다. 요즘 사회 일각에서 매춘을 행위 자체보다는 그 행위의 굴레에 씌워져 핍박당하는 여성의 인권에 초점을 맞춰보려는 움직임이 더 활발하다.

10일 국감에서 한 의원이 “법으로는 금지하면서 실제로는 묵인하는 정부의 이중적 윤락정책 때문에 수많은 윤락여성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은 적확하다. 천호동 홍등가의 사그라진 불빛을 생각하며 다시한번 펼쳐본 박종성의 ‘한국의 매춘’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백만명이 넘는 여인들이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이땅의 ‘낮과 밤이 없는 대지’를 누비는 현실…. 정책까진 못 만들어도 그네들 역시 인간이며 이땅 위 민주주의를 같이 호흡하며 살고 부대낄 자격이 있음을 이제 겸허히 승인해야만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백8만명의 매춘여성이 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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