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신당동 '대장간 거리'

  • 입력 1999년 12월 10일 19시 52분


섭씨 2000도가 넘는 뜨거운 석탄불. 대장장이가 그 속에서 벌겋게 달궈진 선홍빛 철근을 꺼낸다.

조심조심 모루 위에 올려놓은 철근을 쇠망치로 수십차례 두드리자 신기하게도 문고리로 변신한다.

서울 중구 신당동 한양공고 앞은 대장간 11개가 몰려 있는 서울에서 유일한 대장간 거리.

담금질로 거무튀튀해진 낫 쇠스랑 갈고리 망치 문고리 돌쩌귀 등이 길가에 죽 늘어서 있어 이곳이 대장간 거리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대장장이 경력 40년으로 이곳의 터줏대감인 임병희(林炳熙·70)씨의 망치 두드리는 힘은 젊은 사람 저리 가라다.

대장간이 잘 나가던 마지막 시기는 60,70년대. 현재 동대문운동장 주차장 자리에 있던 30여개의 대장간에서는 담금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경제개발로 건설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공사판에서 필요한 도구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갔기 때문.

▼80년대이후 기계화로 쇠퇴▼

그러나 80년대 이후 대장간의 불길은 식기 시작했다. 인부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인부들이 떠난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불피울 때 쓰던 풀무는 전동모터로 바뀌었고 구멍을 뚫고 철근을 깎는데도 기계가 사용되고 있다.

86년 아시안게임 때 도시정비 과정에서 동대문운동장에서 현재의 장소로 터전을 옮겼다.

대장간은 특히 IMF 경제난으로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임씨는 “건설경기가 극도로 침체하면서 그나마 찾아오던 단골손님도 절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수공 힘들어도 품질은 최고"▼

그러나 자부심은 남아있다.

“그래도 품질 하나는 여전히 최고지. 어디 기계로 만든 것에 비할까.”

튼튼하고 오래가는 품질 덕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장일을 배우고 있는 S공작소 정모씨(31)는 “쇳가루에 석탄가루까지 마시는 고된 일이지만 기계로는 찍어낼 수 없는 ‘그 뭔가’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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