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강남의 비닐하우스촌 누가 살고있나

  • 입력 2003년 6월 23일 19시 03분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비닐하우스촌인 구룡마을. 거주민들의 소유로 보이는 승용차가 줄지어 서있다.-권주훈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비닐하우스촌인 구룡마을. 거주민들의 소유로 보이는 승용차가 줄지어 서있다.-권주훈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 ‘비닐하우스촌’인 구룡마을의 주민자치회는 4월 초 마을의 빈집 280가구를 철거해 달라고 구청에 탄원했다. 빈집 때문에 자신들이 투기 목적으로 비닐하우스를 지었다는 의심을 받기 싫다는 것. 강남구청은 이들의 탄원에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구청 관계자는 “불법으로 남의 땅에 사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행정용어로 ‘신(新) 발생 무허가 불량주거지’인 비닐하우스촌이 서울 시내 곳곳에 있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주민과 땅주인, 담당관청은 모두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만든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비닐하우스촌은 최소 28개 지역에 3900가구 이상이다.

▽‘금싸라기’ 강남에 사는 빈민들=비닐하우스촌은 대부분 강남 서초 송파구에 있다. 1970년대 말 강남지역 토지구획정리사업 때 쫓겨난 이들이 시 체비지나 미개발 사유지에 몰려든 것이다.

이들은 건물 소유권은 물론 주민등록도 없는 상태라 법적으로는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다.

구룡마을 땅주인 모임인 지주협의회는 “임대료도 안내면서 남의 땅을 맘대로 차지했다”고 분개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자신들도 일정 부분 권리가 있다고 항변한다. 한 여성은 “20년 이상 세금 내며 이곳 주민으로 살았다”며 “대책도 없이 삶의 터전에서 나가라고만 하면 어쩌란 말이냐”고 말했다.

서초구 방배동 두레마을 주민은 가구당 8000만원 정도의 이주비를 주면 옮길 수도 있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말도 안 된다”며 일축하고 있다.

▽왜 이곳에 사나=구룡마을 주민자치회 이인 부회장은 “갈 곳이 있으면 여기 있겠느냐”며 “주민 대부분이 전세금 마련은 꿈도 못 꾸고 일정한 직업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주협의회 관계자는 “주민의 말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상당수가 투기 목적이나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심리로 버티고 있다며 그 근거로 비닐하우스촌의 국민기초생활 수급 가구수를 들었다.

현재 생활보호 혜택을 받는 가구는 구룡마을의 경우 전체(1806가구)의 5.6%인 102가구, 송파구 장지화훼마을은 224가구 중 13%인 30가구이다. 두레마을은 72가구 중 한 곳도 없다.

개포1동 사회복지사 강대호씨는 “여기엔 복잡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이라도 법적으로 부양가족이 있으면 수급 대상이 될 수 없다. 또 수급자가 되면 정부에서 주는 일 때문에 큰 돈벌이를 못해 아예 수급자가 되는 걸 기피하기도 한다는 것.

강남구청 관계자는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는 조사에 의해 숨겨 놓은 재산이 들통날까봐 생활보호 수급 신청을 꺼리는 게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해결책은 없나=해결 당사자인 주민과 지주, 담당구청이 서로 상대를 극도로 불신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재로선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다.

구청이나 동사무소는 별 사고가 없기를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들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강제 철거가 쉽지 않아 현상 유지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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