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천면 영산리 이장 김재명(金在明·64)씨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옴천면은 ‘유배지’로 통했다. 발령이 나면 사표를 내고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전라도에서 지금도 다방과 이발소, 문방구가 없는 면으로는 옴천면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려진 땅’으로 여겨졌던 옴천면이 지금 ‘기회의 땅’으로 변신하고 있다.
11일 오후 옴천면사무소 2층 회의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이날 열린 ‘친환경 농법 주민 설명회’에는 주민 100여명이 빽빽이 참석했다. 대부분이 60, 70대 노인들이었지만 회의실의 분위기는 대도시의 ‘기업투자 설명회’ 못지않은 열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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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병충해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볍씨를 섭씨 60도의 물로 소독하라는데 온도를 10분 이상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참석자 중 올해 처음 무(無)농약, 저(低)농약 농사에 도전하는 주민들은 볍씨 선택에서부터 잡초 방제, 물 관리 등에 질문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설명회는 예정시간(1시간)을 훨씬 넘긴 뒤에야 끝났다.
주민 10여명은 설명회가 끝난 뒤에도 아쉬운 듯 50여m 떨어진 강진군농업기술센터 옴천농업인상담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은 최근 주민들이 가장 자주 찾는 ‘명소’. 한때 기구 통폐합으로 문 닫을 위기를 맞았지만 지금은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환경 공부방’이자 ‘사랑방’이다. 이들은 밤늦게까지 퇴비 분배 문제와 못자리 설치, 우렁이 입식 일정을 논의했다.
농민상담소 이규봉(李圭鳳·47) 소장은 “전국적으로도 가장 낙후된 옴천면 주민들이 ‘친환경 농산물 인증’이니 ‘브랜드’라는 어려운 단어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에는 옴천면이 생긴 이래 가장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전남도지사와 강진군수 등 단체장과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옴천면 친환경 농업특구’ 선포식을 가진 것.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면 전체가 농업특구로 지정된 것은 옴천면이 최초다. 수년간 친환경 농법만을 고집해온 주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옴천면에 친환경 농업이 도입된 것은 1997년. 주민 12명이 ‘친환경쌀 작목반’을 만들면서다. 이들은 “농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친환경 농법밖에 없다”며 주민들을 설득해 나갔다. 그러나 처음 반응은 냉담했다. 지금껏 ‘농약 농사’만 지어온 데다 양에만 치우쳐 질적 농업으로 전환하는 데 불안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작목반은 주민들과 함께 외지로 ‘여행’삼아 견학을 떠났다. 또 전문가를 초청해 강좌를 여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이 결과 2001년 62㏊의 논에서 화학비료 대신 퇴비를 넣고 우렁이를 논바닥에 풀어 잡초를 제거하는 ‘우렁이 농법’으로 첫 농사를 지어냈다.
작목반 총무 주장식(周章植·57)씨는 “우렁이 농법을 사용하는 동안 제초제와 농약을 살포하지 못하게 기동감시반을 꾸려 운영하기도 했다”며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친환경 쌀이 일반미보다 40㎏ 가마당 6000원씩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친환경 농법을 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이 청정미는 ‘남도 1번지 쌀’이나 ‘다산(茶山)이 추천한 쌀’이란 상표를 달고 시장에 ‘진출’한다.
지역이 오래전부터 무공해 특산품 토하(土蝦·민물새우)를 생산했던 것도 친환경 농법을 가속한 배경이었다. 토하는 맑은 물에서만 사는 새우로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진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초 농약 때문에 논이나 도랑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주민들은 인공사료를 주고 토하를 키울 수도 있었지만 “옴천 토하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며 계곡 상류에 둑을 쌓고 웅덩이를 만들어 토하를 키웠다. ‘친환경’에 대한 마인드가 작용한 것.
월곡마을 박재원(朴在元·63)씨는 “농약 때문에 토하가 사라지는 것을 본 주민들이 느낀 바가 컸을 것”이라며 “자연친화적 방법은 일손이 많이 가지만 주민들은 옛 방식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현재 옴천토하는 매년 1L들이 용기 400여개를 출하하고 있으나 수요를 따르지 못할 정도로 인기다.
막걸리와 한약재 사료만 먹여 키우는 최고급 육질의 ‘맥우(麥牛)’도 ‘친환경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30농가가 91년 ‘강진 맥우’로 상표등록을 마쳤고 매년 1500여마리를 서울 S유통에 독점 납품해 5억여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옴천면은 올해 전체 논 398㏊ 가운데 62㏊에서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고, 72㏊는 저농약으로 재배하고 있다. 나머지 264㏊는 황토를 넣어 땅심을 돋운 뒤 2005년부터는 면 전체가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고장’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옴천면 방옥길(房鈺吉·46) 면장은 “친환경 농업특구 지정 원년을 맞아 올해 ‘메뚜기잡기’ ‘도랑치고 가재잡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 계획”이라며 “한 많고 서러운 땅의 대명사로 불려온 옴천이 이제 부촌(富村)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다.
▼옴천면은…▼
옴천면은 전체 면적(2969㏊)의 73.6%(2188㏊)가 임야다. 산골짜기가 많다보니 논과 밭은 526㏊에 불과하다. ‘옴내’로 불리는 옴천(唵川)이라는 지명은 들녘을 적시며 흐르는 맑은 시내를 가리킨다. 국내에 이 ‘옴(唵)’자가 들어간 지명은 옴천이 유일하다. 원래 이 ‘옴’은 범어 ‘AUM’의 음역자로 히브리어의 ‘아멘’과 같은 뜻의 불교의 신성어. 면 곳곳에 사찰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지명이 불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6·25전쟁 때 빨치산의 은거지인 장흥군 유치면과 가까워 많은 피해를 보았고 마을 전체가 완전 소실된 곳도 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 963명(464가구) 중 대부분은 1950년을 전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옴천면은 친환경 농업특구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고부가가치 농산물로 21세기 한국 농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이를 위해 면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특산품인 토하와 맥우를 비롯해 야생녹차,
표고버섯, 불미나리 등 환경농업을 지원하기 위해 47억원을 투입한다. 또 특산물 생산단지를 남도답사 코스인 다산초당과 영랑생가, 청자도요지 등과 연계해 체험 관광코스로 개발할 계획이다.
▼주민들의 '회장님' 임시순씨▼
옴천면이 ‘희망의 땅’으로 부활한 데는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이를 주민들에게 설파해온 한 농부의 노력이 컸다.
주민들이 ‘농박(농업박사)’ 또는 ‘회장님’으로 부르는 계산마을 임시순(林枾淳·68·사진)씨. 고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지만 임씨는 유기농법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하다. 또 한국유기농업협회 강진군지회장, 영농지도자회 옴천면 회장을 맡아 친환경 농업의 ‘전도사’ 역할을 펴고 있다.
임씨의 고향은 옴천면 인근인 전남 장흥군 부산면으로, 고교졸업 후 옴천에 정착했다. 평범한 농사꾼이던 임씨가 친환경농법에 눈을 뜬 것은 92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면서 농촌이 진로문제로 한창 힘들 때였다.
“수입 농산물이 밀려들어오고 주민들은 농사를 포기한 채 도시로 떠났어요. 무언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씨는 옴천면 주민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유기농업협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각종 세미나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오리, 우렁이 등을 논에 풀어 놓고 농사를 짓는 선진농가를 방문해 ‘유기농 노하우’를 배우는 등 3년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그는 97년 몇몇 농가와 함께 옴천면 친환경농법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게르마늄 농법’으로 벼를 재배했으나 큰 낭패를 봤다. 계약한 업체가 부도나는 바람에 판로를 찾지 못한 것.
“당시의 시행착오는 큰 교훈이 됐습니다. 이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친환경농법에 맞는 볍씨를 고르고 무농약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들판에 메뚜기가 뛰어놀고, 논두렁에서 뜸부기가 노래하고, 반딧불이가 여름밤 하늘을 수놓는 ‘무공해 농촌’을 만드는 게 임씨의 꿈이다.
옴천=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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