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5년 美후버댐 완공

  • 입력 2006년 5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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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압도됐노라!(I came, I saw, and I was conquered)”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935년 이곳을 찾았을 때 이렇게 외쳤다.

미 서남부 콜로라도 강을 막아 건설된 후버 댐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콘크리트 구조물 가운데 하나다. 높이 218m, 길이 379m, 하부의 폭 203m.

댐 건설에 총 6600만 t의 콘크리트가 들어갔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미국을 가로지르는 16피트(약 4.9m) 폭의 도로를 깔 수 있는 양이다.

댐 건설로 생긴 미드 호(湖)는 물을 방출하지 않고 6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저수량을 갖고 있다.

대공황으로 허덕이던 1931년 3월 시작된 후버 댐 건설 공사는 1935년 5월 29일 마지막 콘크리트를 부으면서 마무리됐다. 엄청난 돈을 투입해 미 경제를 부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초의 대형 댐인 후버 댐 건설 이후 각국에는 대형 댐 건설 열풍이 불었다. 나일, 인더스, 유프라테스 강 등에 대형 댐이 들어섰다.

그 덕분에 인류는 홍수 피해를 덜고, 안정적인 수자원을 갖게 됐으며, 전기도 얻었다.

하지만 반대론도 만만찮다.

댐의 규모가 클수록 잠기는 면적도 넓어져 엄청난 규모의 숲을 잃었다. 댐에는 퇴적물이 쌓이고 하류는 물이 말라 생태계가 바뀐다. 연어 같은 회귀어종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경제적인 면에서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있다. 우선 수몰 지역 주민의 이주와 정착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다. 후버 댐의 물은 수백 km의 수로를 통해 캘리포니아까지 갈 수 있도록 펌프를 돌리는 데만 발전량의 3분의 1을 써야 한다.

찬반 양론이 팽팽하지만 인류는 대형 댐을 계속 건설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었다. 국가적인 건설 사업을 정치인들이 마다하기 어렵다는 것.

후버 댐의 명칭은 건설 시작 당시 공화당 출신 허버트 후버(재임 1929∼33년) 대통령의 이름에서 땄다. 그러나 후버 대통령이 선거에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후보에게 패하자 근처 지명을 따 볼더 댐으로 불렸다.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하자 의회 결정에 따라 다시 후버 댐으로 돌아갔다. 댐 이름조차 정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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