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월 3일 멕시코시티 올림피코 스타디움에 나선 한국 스타팅 멤버의 면면은 화려했다. 역대 축구국가대표팀 중 가장 막강한 선수들로 짜인 팀이라고들 했다.
국민의 기대는 컸다.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으니 설렘이 오죽했으랴. 식당마다 TV 중계 안내문이 내걸렸다. ‘이기면 음식값이 공짜’라는 식당도 있었다.
한국 시간 오전 3시. 사람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TV 앞에 앉았다.
오! 이런.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다. 첫 상대가 바로 그 대회(멕시코 월드컵) 우승팀인 아르헨티나였다. 32년 만에 처음 만난 상대가 하필 세계 축구를 호령하는 아르헨티나라니…. 더구나 축구천재 마라도나가 있지 않은가.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계속 지켜보기 힘들었다. 기술, 전술, 체력 뭐 하나 나은 게 없었다. 게다가 선수들을 짓누르는 부담감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전반 6분 발다노, 전반 18분 루게리, 후반 시작하자마자 다시 발다노. 연달아 아르헨티나의 골이 터졌다. 0-3.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골을 터뜨리진 못했지만 볼 배급과 현란한 드리블 솜씨로 한국팀을 홀렸다.
한국의 사령탑 김정남 감독은 김평석에게 마라도나 전담 수비를 맡겼지만 제대로 안 되자 15분 만에 허정무에게 임무를 넘겼다.
허정무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붙잡고, 밀고, 그것도 안 되면 정강이를 걷어찼다. 마라도나가 그라운드에 나뒹굴길 여러 차례.
허정무가 볼과 상관없이 마라도나를 제대로 발길질하는 사진이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의 표지에 실리기까지 했다. ‘한국은 태권도 축구’라는 말이 나왔다.
허정무는 훗날 “(마라도나는) 볼 컨트롤, 드리블, 스피드, 체력 등 모든 게 완벽한 선수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비록 세계의 벽을 느끼게 만든 경기였지만 후반 28분 터진 박창선의 중거리 슛은 소중했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 사상 첫 득점이었기 때문이다.
골을 성공시킨 뒤 두 손을 맞잡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박창선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954년 스위스대회 2경기 16실점과 아르헨티나전 3실점 등 19골을 먹은 뒤에야 나온 첫 골이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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