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8년 핵잠 노틸러스호 북극해 통과

  • 입력 2006년 8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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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조국, 그리고 해군을 위해. 북극점이다!”

1958년 8월 3일 밤 11시 15분.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 노틸러스호의 윌리엄 R 앤더슨 함장이 115명의 승무원을 향해 외친 말이다.

이들은 해저 152m에 잠수해 역사상 처음으로 북극해의 두꺼운 얼음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잠수함 위로는 두께 3∼15m의 만년빙이 떠 있었다. 여름이 되면 북극의 한밤중을 비추는 태양 빛이 얼음에 부딪혀 푸르스름하게 반짝였다. 프랑스 SF소설가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에서 괴물 같은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이끌고 심해를 누비던 네모 선장의 꿈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7월 23일 미국 진주만을 떠난 노틸러스호는 8월 1일 알래스카의 배로 곶에서 물밑으로 잠항을 시작했고 북극점을 지나 8월 4일 그린란드 북동쪽의 대서양에서 물 위로 떠올랐다. 모두 96시간 동안 얼음 밑에 잠수한 채 2945km의 거리를 평균 20노트로 달렸다. 핵잠수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기록이다.

디젤·전지로 복합 추진되는 재래식 잠수함은 잠항 중 자주 수면 가까이 올라와 공기를 공급받는 ‘스노클링’을 해야 한다. 잠수함의 동력원인 전지를 충전하기 위해서다. 수면이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해를 잠항으로 건너는 것은 스노클링을 자주 해야 하는 재래식 잠수함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핵 추진 체계를 탑재한 노틸러스호는 잠수함 안의 원자로가 만들어내는 전기로 터빈을 돌려 추진하므로 스노클링을 하지 않고도 무한정 잠항이 가능했다. 1회의 핵연료 보급으로 지구를 세 바퀴나 돌 정도였다.

1954년 1월 21일 진수된 노틸러스호는 길이 97.2m로 당시 최대급 잠수함이었다. 노틸러스는 앵무조개를 뜻하는 말로 잠수함의 이름에 곧잘 쓰였다. 최초의 노틸러스호는 1800년 미국의 공학자 로버트 풀턴이 프랑스에서 건조한 잠수정이었고, 이 이름은 ‘해저 2만 리’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핵잠수함 노틸러스호가 북극점 종단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동력원으로서 원자력의 가능성이 입증되고 핵잠수함 시대가 열렸다. 1980년 항해 임무를 마친 노틸러스호는 1985년부터 미국 코네티컷 주 뉴런던에 있는 ‘미군함 노틸러스호 기념 및 잠수함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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