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명의 괴한이 한 남자가 자고 있는 침실을 급습했다. 그들은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를 옴짝달싹못하게 만든 뒤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우고 머리엔 두건을 씌웠다. 그리고 허벅지에 무엇인가를 주사했다.
들것에 실려 나온 남자는 바깥에서 기다리던 밴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리고는 하르툼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특별기 편으로 파리 부근의 군 비행장으로 이송됐다. 6시간 반의 비행시간 내내 남자는 온몸이 묶인 채 자루 안에서 머리만 밖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1949∼ ). 일반인들에겐 ‘자칼’로 더 잘 알려진 인물. 1970년대 이후 국제 수배자 리스트에서 늘 맨 앞에 올라 있던 베네수엘라 태생의 테러리스트다.
그가 체포되던 순간 역시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테러리스트로서 그의 삶은 마르크스주의자이던 부친이 레닌을 본떠 ‘일리치’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이미 시작됐다.
10세 때부터 공산주의 계열의 소년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10대 후반에는 쿠바 아바나 근처의 게릴라 전투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1970년대 초반에는 요르단 암만의 팔레스타인 관련 조직에서 본격적인 전사(戰士)로 양성됐다.
1973년 유대인 사업가 암살 시도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여러 차례 테러를 벌였다. 그러다가 1975년 12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장을 급습해 60여 명을 인질로 잡으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각국 정보기관의 추격이 이어졌지만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 붙잡히고 말았다. 프랑스 정보 당국이 그가 머물던 수단 정부와 여러 차례 협상을 벌인 끝에 사실상 ‘인도’받았던 것. 그는 1997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자칼’이라는 이름은 일반인들에게 친숙하다.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소설 ‘자칼의 날’이 워낙 유명한 데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기 때문.
많은 사람은 그가 ‘자칼의 날’의 실제 모델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소설이 출간된 시기는 1971년으로 그가 테러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이다. ‘자칼’이라는 별명은 그의 소지품에서 소설 ‘자칼의 날’이 나왔다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붙여졌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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