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발표된 미국 대통령의 성명 5696호의 내용.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 성명을 통해 그해 9월 11일을 ‘911 응급 전화번호 기념일’로 선포했다.
한국의 119처럼 미국에서는 911 전화번호가 수많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범죄와 화재, 테러, 자연재해와 같은 절체절명과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응급전화 교환원과 경찰, 소방관들의 구조 활동은 그 자체로 감동의 드라마다. 그래서 매년 미국에서는 911 기념일을 자축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려 왔다.
911 번호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68년 미국 최대 전화사업자인 AT&T가 911을 제안해 의회에서 채택한 것이 시초다. 우리의 119가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도입돼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그 많은 숫자 조합 중에서 왜 911이었을까.
911 운영자협회(NENA)에 따르면 첫째 이유는 △간결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으며 △빨리 다이얼을 돌릴 수 있다는 것. 이전에 지역번호나 서비스번호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911은 채택 이후 한동안 ‘9-11(나인-일레븐)’으로 불렸다. 그러나 침착한 사람이라도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서는 다이얼판에서 ‘11’번을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점차 ‘9-1-1(나인-원-원)’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911 역사상 최대의 비극은 생일날에 찾아왔다.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 등에서 발생한 테러로 3000명 가까이 숨졌다.
이후 911 기념일은 잊혀져가는 날짜가 됐다. 테러가 발생한 지 1년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매년 9월 11일을 ‘애국자의 날’로 선포했다.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9-11’도 자연스럽게 ‘2001년 9월 11일’을 뜻하는 날짜가 됐다.
그러나 미국 응급구조체계의 중심에는 여전히 911이 있다. 911 운영자들이 테러 발생 10일 뒤에 낸 의견서에는 다음과 같은 결의가 담겨 있다.
“911 기념일에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슬픈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911 담당자들은 응급전화를 받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발신자의 생명 줄이 될 것입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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