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밥 말리 마지막 공연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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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9월 2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스탠리 극장.

쏟아지는 불빛과 환호 속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전신에 암이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무대에 올랐다. 밥 말리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2박자, 4박자를 강조한 경쾌한 비트의 레게음악에 그는 공격적인 노랫말을 실었다. 그는 노래의 가치를 굳게 믿었다. 서방세계에 말리는 ‘위험한 아티스트’로 알려졌으나 폭정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그의 노래는 ‘희망’이었다.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를 듣게 할 수는 있다.”

그는 자신의 일대기를 집필하는 스티븐 데이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진 건 분노가 아니라 진실이다. 진실은 강물처럼 남자를 길들인다.”

말리는 중년의 영국인 아버지와 10대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자메이카의 가난한 시골마을. 가족을 돌보는 데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는 말리가 열 살 때 심장마비로 숨졌고 모자(母子)는 빈민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말리는 14세 때 학교를 관두고 대장간에서 일을 시작했다. 짬이 날 때는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었다. 1963년 말리와 친구들은 ‘웨일러스’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그는 밴드의 리더이자 가수, 작곡자였다.

영국의 아일랜드 레코드사를 통해 1973년 데뷔앨범 ‘캐치 어 파이어(Catch a Fire)’를 발표해 세계에 자메이카 토속음악 레게를 알렸다. 1975년 작 ‘노 우먼, 노 크라이(No Woman, No Cry)’는 지금도 레게의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1977년 유럽투어 때 말리는 프랑스 기자들과 축구경기를 했다. 발에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암세포를 발견했다. 그러나 수술을 거부했다. 수술이 음악활동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서였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말리는 1978년 세계 투어를 강행했다. 같은 해 고향 자메이카에서 평화를 위한 콘서트를, 미국 보스턴에서 흑인 자유 투사를 위한 자선공연을 가졌다.

1980년 다시 투어에 나선 그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조깅을 하다가 쓰러졌다. 암은 뇌와 폐, 심장까지 퍼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피츠버그의 마지막 무대에 섰고, 1981년 5월 세상과 작별했다.

장례는 자메이카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레게의 전설’은 깁슨 기타와 축구공, 마리화나, 성경책과 함께 고향마을에 묻혔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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