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보고 싶었다. 가진 건 노새 한 마리와 단돈 1000달러.
사람들은 비웃었다. 그러나 4년 하고도 3개월 16일 뒤. 1974년 10월 5일 미국인 데이비드 쿤스트는 ‘걸어서 지구를 돈 세계 최초의 인물’로 기네스북을 장식했다.
쿤스트는 미네소타 주 와세타 마을의 평범한 영사 기사였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결혼해 가정도 이뤘다. 서른 살의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물어본다. ‘이런 게 진짜 삶일까.’
“모든 것이 지겨웠다. 고향 마을과 직장도 싫증 났다. 흘러가듯 살아가는 나와 주위 사람을 참기 힘들었다. 심지어 내 아내까지도.”
동생 존이 펼쳐든 세계지도는 한 줄기 빛이었다. 동생과 함께 ‘지구 한 바퀴 돌기’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스폰서가 붙을 리 없었다. 안전을 당부하는 주지사의 편지 한 통이 고작. 1970년 6월 20일 아침 가족에게 흥겹게 인사했다. “돌아올 땐 반대편에서 올 거야.”
여행 초기는 순조로웠다. 언론에 알려진 덕에 많은 이의 격려를 받았다. 모나코에선 그레이스 왕비도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위에르달은 웃으며 한마디 했다. “노새가 안됐군.”
터키의 사막도 그들을 막지 못했지만 불행은 찾아왔다. 유니세프와 협력해 어린이를 위한 성금을 모은 게 화근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신문은 그들이 돈을 갖고 다닌다고 오보를 냈다. 1972년 10월 강도가 쏜 총탄에 존이 목숨을 잃었다.
그도 가슴에 총상을 입고 병원 신세를 졌다. 모두가 말렸지만 넉 달 뒤 사고 현장에 다시 섰다. 품에는 존이 사막에서 쓴 쪽지가 있었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다. 비극적 종말이 기다릴지라도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쿤스트의 세계일주는 당시 미국인에겐 충격이었다. 미국 밖은 위험하단 생각에 사로잡힌 ‘냉전시대’였다. 강도사건을 당했을 때도 다들 수군거렸다. 쿤스트는 일갈했다.
“터키와 이란, 인도 사람은 좋은 사람들이다. 비극은 있었지만 난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을 사랑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먼저 예의를 갖추면 그들은 언제나 친절하게 도와줬다.”
호주를 돌아 약 2만3255km. 22켤레의 신발이 닳은 뒤 고향에 돌아온 쿤스트에겐 낡은 짐마차만 남았다. 지친 그에게 기자가 “기회가 있다면 그 힘든 여행을 또 하겠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오. 난 100만 달러 가치 이상의 여행을 했다오. 또 다시 100만 달러를 벌 수 있다는데 왜 망설이겠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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