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질문인 줄 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벽과 싸우다 총선에서 세 번이나 떨어졌다. 그렇다고 대통령 되기가 더 쉽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음 질문. 대통령과 국회의원 중 그만두기 더 어려운 것은 어느 것일까. 최소한 법률적 절차로만 따진다면 국회의원의 사퇴가 훨씬 까다롭다.
국회법은 ①의원 본인이 서명 날인한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하고 ②국회는 의결로 사퇴를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회의원은 대통령과 달리, 그만두는 것조차도 공식적인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이런 특징은 격동의 한국 정치 현장에서 새로운 정치력을 창출하기도 했고, 때론 ‘비극 속 희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1979년 10월 13일.
당시 야당인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66명 전원과 통일당 의원 3명 등 69명이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같은 달 4일 집권당인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 159명이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YS) 의원을 제명시킨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의원 제명의 ‘정치적 희생자’는 지금까지도 YS가 유일하다.
신민당의 결의는 단호했다.
“당 총재가 불법과 변칙으로 강제 추방된 국회에 남아 역사의 공범자가 되기보다는 의회를 떠나기로 했다.”(대변인 발표문)
초강경 의원들은 “의원직 사퇴는 자살과 같다. 그 뒤의 걱정은 필요 없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의회를 떠날 자유, 스스로 정치적 목숨을 끊을 자유조차 없었다. 의원직 사퇴는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그 국회는 여당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퇴서가 전부 반려되거나 선별적으로만 수리될 경우 신민당은 의원들의 처신 문제로 자중지란에 빠질 것이란 전망마저 제기됐다.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한 신민당 의원의 발언.
“변심한 애인을 두고 한강에 투신했을 때 얼음바닥이면 죽고 마는 것이지만 물이어서 허우적거릴 때 애인이 다시 나타나 잘못했다고 빌면 자살을 그만둘 수도 있다.”
여당의 사과를 포함한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는 것. 그러나 10여 일 뒤 발생한 10·26사태는 이런저런 정치적 고민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스스로 국회의원을 그만두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가 보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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