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美워싱턴 25만명 반전시위

  • 입력 2006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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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린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1969년 11월 15일 미국 워싱턴은 이른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경찰은 25만 명이 모였다고 했다. 항공사진을 보니 3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여기에는 작곡가이자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부인인 코레타 스콧 킹 여사도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평범한 시민과 학생이 있었다.

참가자 가운데 유일한 공화당 의원이었던 찰스 구델이 말문을 열었다.

“미군이 철수하면 베트남에서 대량 학살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6년 반 동안 베트남에서 이뤄진 일이 대량 학살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입니까.”

시위대는 백악관과 공화당을 향해 베트남에서 미군을 즉각 철수하라고 주장했다.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단계적 철수 계획을 내놓은 상태였다.

참석자들은 ‘전쟁 중단’이라는 피켓을 들고 워싱턴 중심가인 펜실베이니아 애버뉴를 가득 메웠다. ‘닉슨,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행진이오. 다음에는 발포(發砲)할 것이오’라는 피켓도 보였다.

백악관과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 앞에는 무장 병력이 배치됐다. 육군과 해병대 병력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충돌은 없었다. 당시 이 반전 시위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평화 집회’ 라고 썼다.

미군은 이로부터 4년 뒤에야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사망자 5만6000명이라는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최근 미국 시민은 새로운 형태의 반전 시위를 했다. 유권자들은 지난주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줬다. 공화당의 이라크 정책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즉각 로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경질했다.

“로마 시민은 시저를 전쟁터로 보냈습니다. 프랑스 시민 역시 나폴레옹을 전쟁터로 움직였죠.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우린 이런 (역사의) 경험에서 배워야 합니다.”

1969년 시위에 참가했던 유진 매카시 민주당 의원이 군중을 향해 외친 말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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