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의 해적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바다의 강도였을 뿐이다. 동원호를 납치한 소말리아의 해적이나 남중국해 등지에서 AK소총을 들고 설치는 요즘의 해상 강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해적 중에는 영국 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도 받고, ‘해신(海神) 장보고’처럼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프랜시스 드레이크(1543∼1596)였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묵인한 반(半)합법적인 ‘해적왕’이었다. 얼마나 악명이 높았던지 스페인 사람들은 그에게 ‘엘 드라케(용)’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1577년 12월 13일. 엘리자베스 여왕의 은밀한 지원을 받은 드레이크는 ‘골든 하인드(황금 암사슴)’호를 이끌고 영국 플리머스 항을 출발했다. 그와 선원들은 스페인의 보물선 ‘카카푸에고’를 습격해 얻은 수많은 금은보화를 싣고 태평양과 인도양을 거쳐 1580년 귀환했다.
골든 하인드호가 싣고 온 화물의 가치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 유로로 평가된다. 여왕은 지원금의 47배에 이르는 배당금을 받았고, 선원들과 재정후원자들도 돈벼락을 맞았다. 1581년 여왕은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이 소식이 스페인에 알려지자 잔인한 해적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영국 원정을 위한 ‘아르마다(무적함대)’를 꾸렸다. 하지만 영국 해군제독으로 공식 임명된 드레이크는 정보력과 기동력, 허를 찌르는 전술로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찔렀다. 해적 특유의 치고 빠지기식 함포전술에 타격을 입은 무적함대는 프랑스 칼레 항에서 잠시 집결해 있던 중, 삼국지 ‘적벽대전’을 연상케 하는 드레이크의 화공전술과 때마침 불어온 폭풍우에 궤멸됐다.
무적함대의 궤멸은 서구의 중심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꿔 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영국은 스페인령이었던 미국을 손아귀에 넣었고,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전성기를 누리며 영어를 전 세계에 퍼뜨릴 수 있었다.
카리브 해 연안의 암초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여왕의 해적’ 드레이크는 요즘 온라인 게임에서도 인기 있는 캐릭터다. 또한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그의 정보력과 기동성에 바탕을 둔 ‘해적전술’은 경영학의 주요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