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호그(groundhog)는 ‘마멋’으로도 알려진 대형 다람쥣과 동물을 가리킨다.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이 동물을 통해 봄이 언제 올지 예측해 보는 행사다. 그라운드호그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집 밖으로 나올 때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지 않으면 봄이 4주 정도 뒤에 오고, 그림자를 보면 봄이 그보다 늦게 온다는 것. 즉, 이날은 미국판 경칩(驚蟄)인 셈이다.
그라운드호그 데이가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기념일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15세기 무렵부터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신비한 예보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미신이 전해졌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민담도 전해 온다. 동면하던 고슴도치가 너무 일찍 깨어나 굴(또는 구멍)에서 나와 제 그림자를 보면 질겁하고 잠자리로 돌아간다는 얘기였다.
동물을 활용한 이런 행사가 미국에 전래된 것은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에 건너오면서다. 독일 이민자들이 정착한 펜실베이니아에는 그라운드호그가 많이 살고 있다. 고슴도치와 비슷하면서도 영리하게 생긴 이 동물을 본 사람들은 고향에서처럼 ‘계절 예보관’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고슴도치에서 그라운드호그로 동물만 바꿨지만, 미국인들의 이벤트 감각은 대단해서 이 그라운드호그 데이를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축제로 만들어 놓았다. 행사용 그라운드호그에 ‘펑크서토니 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극진하게 대접하는 데서 캐릭터에 대한 미국인의 애착과 유머를 짐작할 수 있다(심지어 ‘필리스’라는 이름을 붙인 짝짓기용 암컷도 따로 둔다).
그라운드호그 데이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할리우드 영화 ‘사랑의 블랙홀’(1993년 작)을 통해서다. 이 영화의 원제가 ‘그라운드호그 데이’다. 이기적이고 시니컬한 기상예보관이 그라운드호그 데이를 취재하기 위해 펑크서토니로 갔다가 ‘오늘’이 매일 반복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면서 인생관을 뜯어고친다는 얘기다. 국내 개봉 당시만 해도 원제가 낯설었지만, 요즘은 해마다 2월 2일(현지 시간)이면 그라운드호그 데이 소식이 국내에 보도될 정도로 잘 알려졌다.
대설 예보도, 강추위 예보도 좀처럼 들어맞지 않는다는 요즘, 그라운드호그의 봄 예측 능력은 어떨까? 미신에 뿌리를 둔 이 예측의 정확성은 지난 100년간 39%였다고 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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