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도 한때는 시력장애인이었다. 설리번은 맹인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고 이후 몇 차례의 수술을 거쳐 시력을 되찾았다. 학창 시절 불같은 성미로 유명해 사나운 헬렌의 가정교사를 맡는 데는 제격으로 보였다.
20대의 젊은 선생님은 과격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걸 곧 파악했다. 헬렌은 다른 사람처럼 듣고 말할 수 없다는 데 광란에 가까운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설리번 선생님은 아이의 손바닥에 낱말의 철자를 써주기 시작했다. 헬렌은 그 행위가 그냥 놀이인 줄 알았다. 선생님은 철자를 쓰고 또 썼다. 선생님의 끈기 있는 노력에 아이는 한 달 만에 ‘말과 사물의 관계’를 알게 된다. 설리번 선생님이 우물가의 시원한 물에 헬렌의 손을 담가 주고 손바닥에 ‘W-A-T-E-R’라고 썼을 때, 헬렌은 그게 ‘시원한 무엇’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움의 기쁨에 헬렌은 기뻐 날뛰었고 그날 하루 30여 개의 단어를 배웠으며 석 달 뒤엔 수백 개의 단어를 습득하고 간단한 문장을 쓸 수 있었다.
이듬해 봄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을 자신이 졸업한 맹인학교로 데려간다. 점자를 읽게 됐고, 입술을 만져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기술도 배웠다. 대단히 총명했던 헬렌은 무섭게 공부해서 19세에 하버드대의 자매학교로 불리던 여자대학 래드클리프대에 입학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헬렌이 공부하는 내내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이 듣는 수업 내용을 모두 써주었고 읽어야 할 책을 모두 점자로 옮겨주었다. 장애인에게 행해지는 불평등 대우에 거세게 저항하면서 순회강연과 저술활동을 할 때에도 설리번 선생님은 언제나 함께였다.
1935년 설리번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런 얘기를 남겼다. “나는 외로웠고 사랑받기를 원했다. 그때 헬렌이 내 삶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살도록 내 삶을 바쳤으니 감사한 일이다. 부디 내가 떠난 뒤에도 그녀가 나 없이 살도록 도와주시기를.” 장애를 극복한 ‘기적’으로 유명한 헬렌 켈러. 그러나 설리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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