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배고프다”고 보채는 어린 아들에게 빵을 주는 대신 심부름을 시킨다.
“이 램프의 속이 비었어. 그래서 너처럼 배가 고프단다. 심지에 기름을 먹이지 않으면 램프는 골이 나서 우리를 캄캄함 속에 가둬 버릴 거야. 깡통을 들고 가서 석유를 좀 사 오렴.”
1875년 4월 2일 태어난 월터 크라이슬러의 유년기 모습이다. 이런 어려움은 훗날 그가 제너럴모터스(GM), 포드와 함께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로 불린 크라이슬러(현재 ‘다임러크라이슬러’)를 창립하는 원동력이 됐다.
크라이슬러는 자서전에서 “나는 ‘거센 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첫 직장은 철도공장 청소부였다. 승진을 거듭해 선로 점검 등을 담당하는 기관차 과장으로 있을 때도 그는 “철도를 순조롭게 운영하기 위해서라면 하루 19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열정이 자동차로 옮아간 것은 30대 중반 첫 자동차를 구입하면서부터. 당시 그의 전 재산은 700달러. 한 자산가를 끈질기게 설득해 융자받은 4300달러를 더해 5000달러짜리 자동차를 샀다. 그는 운전할 줄도 몰랐다. 석 달 넘게 헛간에서 자동차 엔진을 뜯어 보고 또 뜯어 봤다. 부인에게서 “한 번도 타지 않으려면 뭣 때문에 자동차를 샀느냐”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크라이슬러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뒤에도 자신을 ‘노동자’라고 불렀다. 그의 자서전 제목이 ‘한 미국 노동자의 생애(The Life of an American Workman)’이고 그가 ‘작업복이 정장인 사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크라이슬러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창문을 닦던 청소부가 얼른 청소 도구를 챙기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왜 나가나? 자네는 닦은 유리창 개수에 따라 돈을 받지 않나?”(크라이슬러)
“사장님 일 보시는 데 방해되지 않을까요?”(청소부)
“천만에. 자네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내가 다른 방으로 가지.”(크라이슬러)
‘1분 1초가 억만금’ 같은 요즘 CEO들에게 크라이슬러 같은 행동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단, 노동자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만큼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소중하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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