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5년 소아마비 백신 안전성 확인

  • 입력 2007년 4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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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과학자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가 첫 번째로 도착했다.’

1993년 3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세기 100대 인물’로 소아마비 퇴치에 공헌한 한 의학자를 꼽았다. 조너스 소크 박사였다.

요즘 소아마비는 무서운 병이 아니다. 예방접종 덕분이다. 그러나 50여 년 전만 해도 인류는 소아마비와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타임은 이렇게 회상했다.

‘소아마비가 창궐했던 1940, 50년대 미국에서는 5000명 가운데 한 명꼴로 희생자가 나왔다. (병균을 피해) 산으로, 사막으로 서둘러 피난했다.’

소크 박사는 이 투쟁사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다. 그의 도전은 의대를 다니던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강의에서 ‘화학적인 방법으로 몸속에 면역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배웠죠. 그런데 다음 강의에서 ‘면역체계를 갖추려면 그 병을 실제로 앓아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누군가가 틀린 말을 하고 있던 것이죠.”

소크 박사는 첫 강의 내용에 주목했다. 병을 앓지 않고도 체내에 방어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백신 개발에 몰두했다. 미국 소아마비 구제 모금단체인 ‘마치 오브 다임스’도 소크의 백신 연구에 동참했다.

1954년 미국은 ‘소크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거대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6∼9세의 어린이 200만 명이 대상이었다. 이에 앞서 1952년 소크 박사는 백신의 유효성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은 물론 아내와 자녀들까지 백신을 맞은 상태였다.

시험 결과는 이듬해인 1955년 4월 12일 나왔다.

‘백신은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있다.’

소크 백신은 수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지켜냈다. 1952년 미국에서 5만7000여 건의 소아마비 사례가 보고됐으나 백신이 보급된 뒤에는 10분의 1 이하로 급감했다.

소크 박사가 결승 테이프를 끊었지만 다른 방법으로 같은 목적을 이룬 사람이 앨버트 세이빈 박사였다. 죽은 바이러스를 이용한 소크 백신과는 달리 그는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약화시켜 사용하는 방법으로 ‘세이빈 백신’을 개발했다.

두 백신의 효과와 장단점을 놓고 한때 논란이 있었지만 모두 소아마비 예방에 큰 기여를 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덕분에 인류는 소아마비 퇴출의 날을 카운트다운하고 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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