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7년 ‘냉전’ 용어 첫 등장

  • 입력 2007년 4월 1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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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바루크(1870∼1965). 증권 브로커로 출발해 백만장자가 된 미국 금융업자다. ‘월스트리트의 외로운 늑대’로 불린 그는 재력을 바탕으로 민주당 출신인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경제 및 외교정책 고문을 맡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전시산업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2차 대전 후에는 유엔원자력위원회 미국 대표를 지내기도 했지만 선출직에는 나서지 않았다. 그 대신 두둑한 선거자금을 기부하며 민주당 후보들을 지원했다.

그는 워싱턴의 백악관 앞 라파예트 공원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정부 정책을 토론하기를 즐겼다. 이런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그가 늘 앉아 있던 공원 벤치는 그의 ‘사무실’로 일컬어졌다. 나중에 이 벤치는 바루크에게 헌정된 기념물이 됐다.

1947년 4월 16일, 그의 고향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하원은 의사당 벽에 그의 초상화를 제막하는 행사를 열고 한 마디를 부탁했다. 간단한 답례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미국의 노사관계 현실을 질타하는 바루크의 신랄한 연설에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미국이 세계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재건하는 동력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노동과 경영의 화합이 필요하다”며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노사(勞使)가 각각 파업 금지와 해고 금지를 약속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경고는 이어졌다.

“결코 자기기만에 빠져선 안 된다. 오늘날 우리는 냉전의 한복판에(in the midst of a cold war) 있다. 적들은 곧 해외에서, 국내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세계 평화는 우리의 희망이자 목표지만 적들에겐 절망이자 패배일 뿐이다.”

냉전? 유혈충돌(열전·hot war)은 없지만 싸움은 계속되는 차가운 전쟁이라고?

당시 이미 그와 비슷한 경고의 목소리는 많았다. 조지 케넌 소련 주재 미국 대리대사의 ‘장문의 전보’와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철의 장막’ 연설,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공식화한 ‘트루먼 독트린’에 이르기까지….

2차 대전 동맹국이면서도 불신과 갈등이 심화되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절묘하게 묘사한 이 단어를 언론은 놓치지 않았다. 이후 ‘냉전’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20세기 후반의 40여 년을 규정하는 용어가 됐다.

냉전이 끝난 지 10여 년. 강국으로 재부상한 러시아가 미국의 일방주의에 도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신(新)냉전’ 또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경고도 벌써부터 나온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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