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새벽 3000여 명의 시민이 가전제품이 아니라 쌀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소극(笑劇)의 총감독은 이 회사 사장인 미야지 도시오(宮路年雄).
쌀 흉작으로 쌀값이 급등하자 미야지 사장은 농가에서 직접 쌀을 사들여 시중 가격의 50%만 받고 판매한 것.
이 소식을 들은 일본 식량청은 “허가받지 않은 쌀 판매는 불법이니 당장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미야지 사장은 “정부가 쌀 수급 정책에 실패해서 생긴 일인데 누구를 탓하느냐. 소비자에게 쌀을 싸게 파는 것도 죄냐. 고발할 테면 고발해라”고 맞받았다.
문제의 쌀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팔렸고 정부 당국의 미야지 사장 처벌 건은 여론의 눈치 때문에 흐지부지됐다.
소비자에게 물건을 싸게 파는 데 방해가 되는 정부 규제에 과격하게 저항하는 미야지 사장의 기행(奇行)은 그에게 ‘가격파괴 왕’ ‘소비자의 십자군’이란 명예로운 별명을 안겨줬다.
실제로 그는 같은 해 12월 한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나는 벌써 66세다. 시간이 별로 없다. 정부의 가격 규제 정책을 바꿀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을 희생해도 괜찮다. 감옥에 갈 각오가 돼 있다.”
미야지 사장이 1998년 5월 9일 70세의 나이로 숨지자 부음 기사 중에 “정부 규제에 대한 그의 오랜 ‘게릴라전’도 이제야 막을 내렸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
그가 그처럼 가격을 파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늘 가지고 다니는 루이비통 가방에 있었다. 그 가방 안에 항상 들어 있는 3000만 엔의 현금 덕분에 파격적으로 싼값에 물건을 사 올 수 있었다는 것. 그 현금 거래 때문에 2000만 엔을 도둑맞고 150만 엔을 강도당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지만….
한때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미야지 사장의 친소비자 정책 때문에 그의 제품을 산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그의 회사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망하고 말았다.
비록 그의 회사는 간 데 없지만 ‘가격은 파괴되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명언은 지금도 세계 유통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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