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6월 2일.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감격에 겨워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455년 만에 탄생한 비(非)이탈리아계 교황이자 공산권 국가를 방문한 첫 교황이었다. 8개월 전 교황으로 선출돼 고국을 떠날 때는 카롤 보이티와(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본명) 추기경이었으나 이제 교황의 신분으로 폴란드를 방문한 것이었다.
그의 방문과 더불어 소비에트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신음하던 폴란드에는 거대한 자유화 물결이 몰아닥쳤다.
9일간의 방문 동안 폴란드 인구의 3분의 1인 1000만 명이 교황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며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민주화운동을 지지한 교황의 영향으로 14개월 뒤 폴란드 자유노조연대가 결성됐다.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최초로 결성된 반체제 노조였다.
당시 자유노조를 이끌었던 지도자 레흐 바웬사는 후일 본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교황이 방문하자 하느님을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도 다같이 한자리에 모여 십자가를 그었다”며 “1980년 자유노조연대를 조직할 때까지 나는 10명의 동지와 10년간 외로운 싸움을 했지만 교황의 폴란드 방문 이후 10명이 10만 명이 되고 급기야 1000만 명이 됐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교황의 폴란드 방문은 동유럽 전체로 자유화 물결이 퍼져 나가는 데 영향을 준 중대한 사건이었다.
2005년 서거할 때까지 세계 129개국이나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 존중과 평화에 대한 열망, 화해의 정신을 강조하며 가는 곳마다 눈 녹듯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
198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며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외쳐 주위를 감동시켰다.
“소비에트 체제에는 미국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였다”는 비유는 교황의 가치와 존재감이 어땠는지를 잘 말해준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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